지난 해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해메다 9월 숨을 거둔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이 5일(토) 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고인이 숨을 거둔지 꼭 41일만이다. 먼저 이날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미사가 열렸다. 고인의 장례미사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와 전국 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카톨릭농민회 담당 사제단이 공동 집전했다.
강론을 맡은 김희중 주교는 국가책임을 강조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백남기 형제가 우리곁을 떠난게 아니라 우리가 떠나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먹거리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바라는 고인의 외침이 참혹하게 살수차에 의해 죽을 정도로 부당한 요구였나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할 국가가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그러나 아직까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공권력의 부당한 사용으로 인해 한 생명이 죽었는데 아직 공식적인 사과도 없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 있는 분이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해주기를 바랍니다. 갑자기 일어난 사건은 아닙니다. 수많은 노동자, 농민 외침 무시당해왔고 우리가 그 목소리를 무관심하게 외면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유가족 측은 "제대로 된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의 장례를 모시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라고 해야겠다"며 국가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농민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기다리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고인의 장녀인 백도라지씨가 보낸 서한 중 일부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국가 폭력의 책임자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이들은 살인미수죄가 아니라 살인죄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이들입니다.
국민들의 힘으로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열었지만 강신명과 구은수는 뻔뻔하게도 가족들 앞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다고 해서 반드시 사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을 모욕했습니다. 반성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들을 처벌하고 정부의 책임 있는 사죄를 받아내는 것이 우리 가족들의 첫 번째 싸움입니다.
지난해 아버지께서 시위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쌀값 폭락을 비롯해서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더 힘들어지는 농민들의 생존권 문제를 세상에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들의 해결은커녕 더욱 심각해진 상황에서 농민들은 또 다시 11월 12일 민중총궐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쌀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료 값보다 싼 쌀농사를 계속 지어서 무엇하냐'는 농민들의 한숨도 들립니다. 이제는 더 떨어질 데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여러 차례 농민들이 쌀값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서울로 올라왔지만 정부의 대답은 아버지가 물 대포를 맞으셨던 그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농민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기다리는 것이 백남기 '농민' 가족들의 두 번째 싸움입니다."
장례미사를 마친 고인의 유해는 지난 해 고인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종로 1가 르메이에르 타워를 향해 행진했고, 바로 그 자리에서 노제가 진행됐다. 노제를 마친 운구행렬은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영결식을 치른 뒤, 고인의 고향인 전남 보성으로 향했다.
고인은 6일(일) 전남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 묘역에 안장된다. 5일(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치러진 영결식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및 시민 2만 여명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