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는 박근혜 대통령이 종교계 인사들과 면담을 가진 일을 두고 종일 들끓어 올랐다. 박 대통령은 이날 종교계 원로들과 만나 국정현안을 논의하겠다며 가톨릭 염수정 추기경, 개신교 김 목사,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를 청와대로 불렀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굉장한 논란이 일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특유의 신랄한 어조로 "대한민국 침몰을 막으려고 하나님께서 세월호 아이들을 희생시켰다는 망언을 한 목사를 만나느니 차라리 굿을 하라"고 일갈했다. 같은 당의 최민희 전 의원 역시 "오늘 박 대통령은 민심 듣는다면서 세월호 망언 김삼환 목사를 만났다. 빨리 내려 놓으셔야한다"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새삼 김 원로목사의 망언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김 원로목사는 세월호 참사 때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세월호를)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를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빈축을 샀다.
염수정 추기경 역시 김 원로목사에 비해 강도는 덜하지만 세월호와 관련, "(세월호특별법 여야 협상 등) 정치적 문제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며 모호한 입장을 취해 여론의 지탄을 받은 바 있었다. 박 대통령이 김 원로목사와 면담한 일을 단독으로 알린 <한국일보>는 "국민과 종교계 일반의 민심을 청취하기 위한 면담이라는 취지가 무색하다"고 적었다.
이 지점에서 전여옥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남긴 어록에 주목해보자. 전 전 의원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품성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박근혜 위원장은 자기의 심기를 요만큼이라고 거스르거나 나쁜 말을 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그가 용서하는 사람은 딱 한 명, 자기 자신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박 대통령은 자신의 귀를 즐겁게 해줄 말만 듣고, 이런 말을 즐겨하는 자들을 가까이에 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김 원로목사는 적임자라 할 수 있다. 김 원로목사는 2014년 3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박 대통령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자리엔 박 대통령도 참석해 있었다. 김 원로목사의 발언을 다시금 끄집어 내 보자.
"대한민국은 통일의 비전을 가진 대통령을 만났다. 통일은 대박이다. 대운이요, 대길이다. 교회도 통일을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고레스(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계몽군주)와 같은 지도자가 될 것."
현재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급전직하 해 한때 5%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박 대통령이 모든 공적 기구를 무시하고 무자격자인 최순실에게 국가 중대사를 맡겨, 대의 민주주의를 천명한 대한민국 헌법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사회 각계각층, 심지어 중고등학생들까지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박 대통령을 규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불통'으로 일관하고, 오로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김 원로목사나 염 추기경 같은 이들을 청와대로 부를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 최순실에게 당하기만 했을까?
이 와중에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잘 알려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성서를 인용해 박 대통령 지키기에 나섰다. 이 대표는 7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 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 보면 금지되어 있는 선악과 과일 하나 따먹은 죄로 아담과 하와는 천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자손 대대로 벌을 받고 있다. 한 간교한 사람을 분별하지 못해 박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평생 쌓은 명예와 업적과 수고를 다 잃었다."
풀이하면 박 대통령이 한 간교한 사람, 즉 최순실을 분별 못해 이 어려움을 당한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인연은 고 최태민 목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 등 정보 당국은 최 목사가 당시 영애였던 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러자 박 대통령은 방패막이를 자처해 최태민을 구명했다.
그 시절은 대통령을 비판하면 중앙정보부는 엄청난 고문을 가해 간첩으로 둔갑시키는 일이 횡행했었다. 지금까지 고문 후유증을 앓고 있는 분들도 많다. 그렇기에 최태민 일가와 연을 유지해온 데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전여옥 전 의원의 어록을 살펴보자. 전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의 서재를 보고 이렇게 적었다.
"그 사람(박 대통령)의 서재에 가보면 그 사람을 안다. (서재에 가보니) 책이 일단 별로 없었고 통일성이 없었다. ‘여기가 서재인가' 생각했다."
한 마디로 박 대통령이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단두대', ‘혼이 비정상', ‘우주의 기운' 등 지적 능력을 의심케 하는 낱말을 구사해 많은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아무리 용한 무당이 옆에서 감언이설로 꾀어도, 입심 좋은 목사가 화려한 언변으로 귀를 현혹해도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합리적 사고와 판단력,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할 열린 마음만 있으면 귀를 홀리는 말은 쉽게 뿌리칠 수 있다. 결국 최순실 같은 자들을 가까이 한 건 박 대통령의 무지와 오만이 부른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신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았다는 해명에 급급한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염 추기경, 김 원로목사와의 면담 석상에서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등 성도들에게 오해받을 사이비 종교 관련 소문 등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지난 4일 있었던 제2차 대국민 담화에서도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다짜고짜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아마 대번에 코끼리부터 떠올릴 것이다. 이런 심리는 정치인들에겐 치명적이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불거졌을 때 닉슨 대통령은 ‘난 사기꾼이 아니다'고 강변했다. 그러자 여론은 닉슨이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했다. ‘사이비 종교와 무관하다'는 박 대통령의 해명 역시 그가 혹시라도 진짜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건 아닌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박 대통령의 7일 행보를 살펴보니, 그가 권좌에 계속 있으면 이 나라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든다. 안 그래도 박 대통령의 실정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됐다.
혹시 또 알까? 박 대통령의 퇴진을 염원하는 국민들이 계속 많아지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 이 같은 소원이 현실화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