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김경재 목사 1998년 6월 21일 설교

경동교회/ 당시 경동교회 협동목사

일상 속에 계시는 생명의 영


창세기 8장 20~22절

노아는 주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 주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마태복음 6장 30~33절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최근에 널리 알려진 몇 사람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유리공업에 큰 공헌을 하시고 크리스찬 아카데미사업에도 많은 업적을 남기셨던 최태섭 장로님께서 타계하셨습니다. 영화 '벙어리 삼룡이'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였던 연기자 김진규씨도 며칠전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6월이 되니 소월의 시가 생각납니다. "산에는 꽃이 피네/ 갈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쉰 다섯 퇴출기업체가 발표되었으니, 또 수 많은 직장을 잃게 되는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큰 근심에 쌓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본인이 되거나, 직계가족이 되거나, 일가친척 중에서나 실직의 시련을 감내해야하는 어려운 때입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산다는 일의 근본과 뿌리를 조용히 안으로 성찰함으로서 이 어려운 때를 슬기롭게 극복해가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8장을 보면 노아와 그 가족일행이 대홍수가 끝난 후에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가족이 드리는 제사를 흠향하시고 스스로 하나님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이 다짐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이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버리지는 않겠다" 그리고 덧붙여서 말씀하시기를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파종과 추수, 더위와 추위, 사계절의 변화, 밤과 낮 주야교체는 그야말로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적인 생활리듬입니다. 그래서 구태여 언급하지 않아도 저절로 굴러가는 자연의 이치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서기자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렇게 너무도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 자연의 이치와 계절의 순환까지도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이고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이고 은총인 것을 성찰하게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항상 비상한 체험을 해야할 것이라고 미리 걱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원이나 부흥회 같은 특별집회에 참석해야만 성령의 신비로운 임재경험을 부분적으로나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이 타성에 젖어 있고 너무나 심령이 여러 가지 일로 분산되고 산만해져 있어서 한가지 일 곧 성령체험에만 집중하기 위해 그러한 기도원을 찾거나 부흥회에 참석할 필요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성령은 그러한 특별한 때와 장소에서만 역사하시고 현존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니 도리어 성령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과 경험 속에서 그 신비로우신 빛과 영광을 구름사이의 해처럼 문득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땅이 있는 한 파종과 수확,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단지 자연 속에 있는 인과율의 법칙이나 지구의 자전공전의 주기적 운동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땅이 있는 한 인생과 역사현장에는 끊임없는 흥망성쇠, 성공실패, 건강과 질병, 전쟁과 평화, 탄생과 늙어죽음, 빛과 어두움, 선과 악의 투쟁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그런 일들이 우리시대에만 있다고 놀랄 필요도 없고, 탄식할 필요도 없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항상 있는 그 일상성 속에 현존하는 비범한 것, 일상성 안에 항존하는 신비자 하나님의 은총, 보존하시고 생명을 지키시려는 의지,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을 감지하고 그것을 음미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눈이 일상적인 일속에서 비범한 것이 현존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맹인이 되어 있다는데 있습니다. 염려와 걱정에 너무 사로잡혀 있어서 일상 속에 계시는 신비하신 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난하고 지친 군중을 보면서, 공중에 날아가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뭘먹고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지만, 그래도 그 말은 진실이고 정말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사람대접해 주시는 하나님 아들의 말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은 하루식량이 걱정이었던 가난한 민초들이었습니다. 결코 노동이 필요없다던지, 끼니걱정말고 날마다 교회에 나와 설교 말씀 듣고 성경 읽고 있노라면 의식주 문제는 하나님이 모두 해결해 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공중나는새 한 마리가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알고 있는 예수님께서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척박한 중동의 토질과 뙤약볕 아래서 백합화 한 송이가 꽃피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힘겨운 노력을 다하는가를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낭만적 의미로 그런 말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의 초점은 의식주문제, 정치문제, 이념문제, 경제성장, 아이엠에프 극복은 살아가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의 전존재를 사로잡아 바쳐야 하는 궁극적 주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그네 여정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에게 의식주 문제는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삶의 목적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먹을 때, 밥 한 그릇은 거룩한 생명의 떡이 되지만, 먹기 위해서 살려고 할 때는 밥한 그릇은 썩어질 물질로만 남게 됩니다. 우리가 여행 목적과 방향을 잊어버리고 여행가방 꾸리는 일에 전 관심을 쏟느라고 정작 여행다운 여행을 못하고 일생을 다 허송해 버리는 사람이 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시인, 예술가, 성인은 그 점을 다른 사람보다 좀더 분명하게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일 상속에 살며시 와있는 거룩한 것의 현존, 신비이신 하나님의 감추인 얼굴, 일상적인 일 속에 와 계시는 성령의 영광스런 빛과 음성을 보고 듣는 사람들입니다. 일상의 과정 어느 순간 속에 침투해 들어오시는 그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그것을, 살포시 안아주시는 사랑의 가슴을 보통사람보다 좀더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어떤 때는 빽빽하게 들어찬 아파트 단지 안에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두서너살박이 아이들 걸음마 속에서 그것을 보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후드득 떨어지는 꽃잎들 속에서 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신론자이든 신앙인이든 이미 사람으로 태어난 그 때부터 모든 인간은 일상 속에 현존하는 신비의 은혜와 능력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것 속에서 경험하는 성령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경험중 가장 구체적인 것은 사랑의 경험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들의 영혼을 맑게 하고 무엇이 귀중한 일이고 무엇이 버려도 될 지엽적인 일인지를 분별하는 혜안을 띄어줍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받는 사람은 사물의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분별하는 눈이 열릴 뿐만 아니라,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가치와 항상 있을 가치를 분별하고 그 안에서 영원을 맛봅니다. 인간의 모든 지식과 통찰과 판단이 상대적이고 부분적일지라도 온전한 것을 미리 앞당겨 맛보게 하는 사랑, 바로 그것이 성령 그 분의 몸체인 것을 알게 됩니다. 물이라는 물질은 물을 마시고 얼굴을 씻음으로서 물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하나님은 사랑으로 계시고 성령은 사랑의 능력과 현실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 속에서도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은 현존하시고 우리를 사람 되라 부르십니다. 사랑과 진실 그리고 정의로움과 화해하는 가운데, 마음이 가난해지는 그 일들 속에서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을 가까이 조용히 체험하시는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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