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에서 이어집니다.
트럼프의 당선은 한국과의 관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혹여 미국 대통령 선거가 바다 건너 남의 나라일이라고 무관심하지 말자.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한미 관계는 요동치게 마련이다. 사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는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트럼프는 후보 유세 기간 내내 한국과 관련, 민감한 쟁점 현안을 끄집어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주한미군 분담금 문제였다. 트럼프는 지난 5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앵커 :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 지명자가 최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한국의 경우 주한미군 인적비용의 50%가량을 부담한다'고 증언했는데 어떤 생각인가?
트럼프 : 100% 부담은 왜 안 되는가?
앵커 : 한국, 일본, 독일 등 미군 주둔 국가 측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인가?
트럼프 : 당연하다. 그들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이 화제로 떠오를 때면 "한국이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 부담금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되풀이 했다.
일단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되자 수위를 낮추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우리시간으로 10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박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한다.
"미국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굳건하고 강력한 방위태세를 유지하겠다. 흔들리지 않고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위해 끝까지 함께하겠다."
트럼프의 발언은 아주 원론적인 수준이다.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공식 직무를 수행하면서 입장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른다. 그러나 주한미군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제기를 할 것이란 예상은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은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이 매끄럽지 않아 트럼프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았을 때, 정말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우리 쪽에 미군 주둔비용 부담을 늘리려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흘린다고 본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트럼프는 지난 4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국가부채가 19조 달러(약 2경2000조 원)이고, 곧 21조 달러가 되려는 상황에서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할 수는 없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무역에서 장벽을 높이겠다는 의미로 읽히지만, 안보에서는 더 이상 미국이 국제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군사비 부담을 줄이고 이를 기회비용으로 활용해 국내 일자리를 늘이겠다는 의도란 말이다. 한국 측에 주한미군 부담금을 떠넘기고 심지어 철수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것도 이 같은 구상의 연장선상이다.
주한미군 철수, 트럼프는 해낼 수 있을까?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실행에 옮기려던 대통령은 트럼프 이전에도 있었다. 지미 카터는 후보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백악관에 입성하자 실행에 옮기려 했다. 그러나 군부를 위시한 정부의 모든 기관이 카터의 반대편에 섰고, 결국 카터의 계획은 무산되고야 말았다.
카터가 왜 실패했을까? 주한미군을 빼내면 북한이 남침해 한반도를 장악할 것을 우려해 군부가 반대했을까? 타당하지만 근본 이유는 아니다. 카터가 집권하던 1976년만 해도 미국은 베트남 전쟁 패배의 악몽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해군 장교 출신인 카터는 한국 등 동아시아에 미 지상군 병력을 묶어두는 일은 금물이라고 보았다.
문제는 카터가 주한미군 철수가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몰고 올 파장과 이에 따른 후속대처 방안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은 채 철군을 강행하려한데 있었다. 만약 카터가 면밀한 정세분석과 주한미군 철수 이후 한반도-동북아 방위전략을 마련해 군부를 설득했다면, 군부도 반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현 정세는 카터 당시와 많이 달라졌다. 미국은 2003년 ‘냉전종식과 9·11 테러 등 안보환경의 본질적 변화로 대규모 주둔군을 특정 동맹국에 집중하는 것보다 전세계적으로 소규모 부대를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전제 하에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임무와 전략은 변화를 맞이했다.
주한미군은 이전까지 ‘인계철선 전략'에 근거해 대북 억지력을 행사해 왔다. 인계철선은 부비트랩 관련 용어로 건드리면 폭탄을 터지게 하는 철사를 말한다. 즉, 북한이 도발해 미군 희생자가 생기면(인계철선) 미국이 자동 개입한다는 것이 이 전략의 뼈대다. 그러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인계철선 전략은 자연스럽게 폐기됐다. 이 시기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던 리언 라포트는 인계철선 전략을 ‘파산한 개념'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었다. 이제 주한미군은 더 이상 한반도라는 경계에서 대북 억지력을 행사하는 임무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보다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고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응하는 신속 대응군의 성격이 더 강하다.
이런 상황임을 감안해 본다면 트럼프가 한국에 주둔한 지상군 병력 철수를 진지하게 고려할 수도 있다. 물론 가장 큰 변수는 군부다. 분명, 주한미군 철수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트럼프가 카터의 실패를 거울삼아 효과적인 대응전략을 들고 나오면 군부로서도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으리라는 판단이다.
아직 예단은 이르다. 그러나 트럼프의 전략을 면밀히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은 필요하다. 사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상관없다. 우리나라 대통령 이하 모든 정부 부처 관리들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방안을 마련해 대응해 나가면 된다. 문제는 우리 정부다. 사실상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국정이 멈춰선 상태라 바다 건너 일까지 고민하는 건 무리로 보인다. 참으로 답답한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