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그리스도인 모두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할 때

[현장] 12일 민중총궐기, 그리스도인들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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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12일 민중총궐기 집회 때 거리를 뒤덮은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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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천주교, 성공회, 개신교 현장 단체들은 12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한성공회 대학로교회에서 시국기도회를 드린 뒤 행진에 참여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민중총궐기'가 열린 12일(토) 저녁 서울 광화문과 종로 일대 거리는 촛불로 뒤덮였다. 기자는 모 기관의 협조를 얻어 인근 고층 빌딩에서 그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촛불로 뒤덮인 서울 도심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시민들이 외치는 함성은 놀라울 정도였다. 주최측 집계나 관련 언론 보도에 따르면 1백만 명의 시민이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고 한다. 참여인원이 1백만 밖에(?) 안 됐을까 싶을 정도로 도심 거리는 촛불을 든 인파로 가득했다.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시민들의 손엔 촛불과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해체', ‘재벌도 공범' 등의 격문이 적힌 손팻말이 적혀 있었다. 이날의 집회를 위해 그야말로 전국각지의 시민 사회단체들이 서울로 향했다. 이날 오전 소셜 미디어엔 고속도로 상황을 알리는 인증샷이 속속 올라왔다. 고속도로는 민중총궐기 참여를 위해 동원한 전세버스로 가득해, 흡사 명절 귀성행렬을 방불케 했다.

민중총궐기 분위기는 대학로에서부터 고조되기 시작했다. 4.16연대, 백남기투쟁본부, 교과서국정화저지넷, 일본군위안부합의무효 전국행동 등 55개 시민단체들은 오후 2시 대학로에 집결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한 뒤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리는 서울시청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바로 그 시각 서울시청에서는 민주노총 주최로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서울시청에서 광화문으로 통하는 태평로, 그리고 행진대열이 통과하는 종로 일대는 인파로 넘쳐났다.

노동, 청소년, 종교 등 참여단위는 다양했으나 구호는 하나, 즉 ‘박 대통령 퇴진'이었다. 행진 중에 한 시민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시민은 최근 유행하는 화법을 곁들여 아래와 같은 뜻을 전해왔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이뤄졌고,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이에 힘입어 대통령도 직접 뽑게 됐고 대통령이 물러나는 광경도 봤다. 그러나 현 시국을 보니 민주주의가 퇴보했음을 느낀다. 이러려고 민주화 운동 한 건 아닌데 말이다. 거리에 이렇게 시민들이 쏟아져 나온 걸 보니 대통령은 꼭 물러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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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12일 대학로에 운집한 행렬 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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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12일 55개 시민단체들은 대학로에 집결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집회를 가진 뒤 민중총궐기 장소인 서울시청 광장으로 행진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들끓는 비난 여론에 눌려 박 대통령을 지지하면서도 드러내놓지 못하는 이른바 ‘침묵하는 다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그래서 지난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을 찾아 보았다. 익명을 전제로 한 접촉에서 지지자들은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이전에 불거졌던 쟁점 현안은 다소 정치적인 면이 강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은 용납하기 어렵다. 사실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 박 대통령을 지지했었는데, 지금은 어서 하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40대 시민 A씨

"박 대통령이 무당이나 다름 없는 최순실에게 휘둘렸으니, 북한 보다 못한 나라가 됐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사탄의 역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걸 다 떠나 국민들을 모욕했으니 어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 80대 시민 B씨

마침 여론조사 기관 갤럽은 지난 8부터 10일 사이 전국의 성인남녀 1천3명을 상대로 실시한 정례 주간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긍정평가한 응답자가 5%에 그쳤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지난 주에도 5%를 기록했었다. 사실상 아무도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장에서 접촉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 같은 결과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려준다.

혼미한 시국, 그리스도인들이 목소리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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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대학로를 출발한 행진대열이 종로5가 연동교회를 지나고 있다.

민중총궐기엔 종교계도 참여했다. 천주교, 성공회, 개신교 현장단체들은 서울 동숭동 대한성공회 대학로교회 앞에서 ‘현장과 함께하는 그리스도교 공동 시국기도회'를 드린 뒤 행진 대열에 합류했다. 행진에서도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목정평) 상임의장을 지낸 정태효 목사 등 목회자들이 앞장섰다.

악한 권세가 창궐한다면, 이에 맞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이다. 이런 점에서 현장에서 약한 자들의 목소리가 되어주었던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시국기도회와 행진에 참여한 데 대해선 찬사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00만 시민이 청와대가 바로 보이는 광화문 광장에 모여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지만, 정작 본인은 퇴진의사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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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12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한 시민이 '박근혜 퇴진'이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3일(일) 오후 "대통령은 어제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으며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며 "또한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란 대목에서 박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런 의지와는 무관하게 집권 여당은 새누리당은 비박과 친박으로 갈려 내분에 빠진 모양새다.

시국이 혼미하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외침에도 대통령은 권력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으려 하지 않는다. 정치권, 특히 집권여당의 상황을 볼 때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은 쉽사리 수습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럴 때 일수록 종교인, 특히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국민들이 하루 날 잡아 총집결해 함성 한 번 외쳤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총궐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참여했으니까 이후의 일에 손 놓아도 좋다고 여겨서도 안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국민들의 함성에 귀기울이고 그동안의 거짓을 참회하고 마음을 돌이킬 수 있도록, 그리고 국민들이 2008년 이명박과 같은 탐욕스런 지도자를 택하지 않도록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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