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식 칼럼] 하나님 나라의 정치학

한신대 명예교수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나라와 역사적으로 병존하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간다. 예수님이 가까워졌다고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사역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사건으로 현실역사 안에서 성장하고 확장되어 왔고, 사도들과 신도들의 선교운동으로 그의 나라가 세계화되어 온 것이며 기독교 사관은 구원사관이다.

아브라함 이후의 이스라엘 민족역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의 모델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인류 구원의 역사는 세계화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류와 세상을 구원하시는 그의 정치는 믿음의 정치였다. 즉 그를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하는 정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과 선생들은 믿음으로가 아니고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다가 실패했다.

사도바울이 롬9:32에서 바로 지적하고 있다. 일찍이 예수님도 자기 당시의 유대인들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아니라고 단언하셨다. 예수님은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하시고 유대인들의 호감을 살만한 정치적 경제적 및 사회적 운동과 행위의 유혹들을 물리치셨다.

기독교 선교는 하나님 나라 확장 운동인데 이 운동의 원리 또는 정책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지 행위를 앞세워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바울이 뚫고 나아가야 했던 두가지 두터운 벽은 로마제국의 정권과 유대교를 비롯한 많은 기성종교들이었다. 이 벽돌을 뚫고 나아가는 비력은 뱀과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함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즉 장애세력들과 무모하게 격돌하거나 생사를 건 육박전과 같은 전술은 피하라는 분부라고 생각된다.

예수님과 바울의 선교를 보면 실제로 그러하였다. 예수님이 유대종교를 비판하셨지만 성전세를 내주라고 말씀하셨고 예루살렘 성전 구역 안의 환전소를 정결케하는 소동을 일으켰지만 성전 깊숙히 지성소가 있는 자리에까지 들어가서 제사를 방해하시지 않으셨다. 그는 빌라도 앞에서 로마정권을 무시하여 재판을 거부하지 않고 자기의 나라(하나님 나라)가 따로 있다고만 말하였다. 또 그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과격한 운동으로 차질을 빚는 것을 싫어하시고 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을 빼어 친 성급한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또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갔을 때 그를 환영하지 않던 어느 마을을 하늘의 불로서 당장 태워없애자고 강권한 제자 요한의 말을 물리치셨다. 그의 선교를 배척한 고라신과 가버나움도 저주하지 않고 마지막 심판날까지 유보하여 두었다.

사도바울이 유대교를 심하게 비판했지만 가는곳마다 유대인 회당을 찾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였고 성전에 가서 삭발을 하고 전통에 따라 서원을 하는 예를 드렸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제사장으로 가르쳤지만 유대교의 제사들도 폐지를 부르짖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신수권을 들어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정권에 무모하게 저항하여 선교의 길이 막히지 않게 가르쳤다. 그리고 그가 로마국가 종교를 정면으로 공격하거나 선교지역의 재래종교들을 정면으로 공격해서 부딪힌 일이 없었고 오직 온건한 선교활동을 통하여 이방인들을 회심케 하였다.

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모교회를 담당한 목회자가 되어서 유대교와 헤롯 정권의 탄압을 받아가면서도 온건한 목회로 유대교와의 충돌을 피해가면서 교회를 보존하였고, 그러함으로써 이방선교의 본거지로서 선교사도들을 이방에 파송하고 후원하였다. 이렇게 해서 초대교회가 이방으로 확장되어 갈 수 있었는데 주후 62년에 결국 그는 아그리파 2세의 박해 아래서 순교하였다.

이상과 같은 초대기독교선교 또는 하나님 나라 운동의 정치를 대안정치(counter politics)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이 정치는 믿음을 근거로 한 정치였지 소위 행동가들(activists)의 정치는 아니었다. 행동가 정치는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세상적인 운동들이 기독교 역사에서 없지 않았다. 중세기 로마천주교 교황들은 세상나라의 정치에 개입하여 정치권세를 손에 쥐고 교회의 교권과 세상의 정치권력까지 행사했다. 어느 한 교황은 교회와 세상을 다스리는 칼 자루를 쥐고 있다고 하였다. 베드로의 칼집에 들어있는데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이 그 칼 자루를 인계받아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믿음으로가 아니고 행위를 근거로 해서 하나님 나라 정치를 하려고 한 것이다.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 나라의 정치는 어디까지나 믿음으로 해야하고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현세적 실체로서 즉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체험을 주며 세상에서 증거해야 하는데 오늘날 한국교계에는 부끄러운 일들이 많다. 교회 목회자들과 교회를 이끌어 간다는 사람들이 뉘우치고 고쳐야 할 일이 많다. 또 교인들이라고 해서 다 성도라고 부르기 어렵다.

오늘날 세계교회 안에서 한국교회의 목사들만큼 스켄들과 문제를 만드는 곳은 없을 것이다. 한국교계 신문들이 계속해서 그런 일들을 보도하고 있지만 달라지는 것 같지 않다. 반면에 한국교회의 정치참여에도 문제가 있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계와 사회는 분열과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고, 정치단체들과 많은 시민단체들의 데모와 함성이 나라를 흔들지경이었다. 지난번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운동은 분명한 과학적 근거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반미, 반정부, 또는 좌경세력들의 정치적 동기가 우세하였는데, 천주교 사회정의구현신부들은 그리스도의 성체(성찬)를 들고 거리로 나와서 정부를 쳤고, 개신교의 어떤 교단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들고 나와서 교회의 힘을 과시하려했다.

그리스도인들도 때로는 사회정의를 위하여 불의를 꺽기 위하여 데모도 하고 외칠수도 있지만 믿음으로 하는 일이 되어야지 무분별한 정치행위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성체나 십자가가 세상정치를 위한 도구나 무기가 될 수 없다.

예수님 말씀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한국교회 안에는 정치적 이슈가 있을때마다 정치단체와 시민단체와 함께 성급한 베드로처럼 칼을 빼들고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가 언제 실현될 것인지를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자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하시고 그 나라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 나라는 어지러운 곳에 있지 않다고 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에 투신할 때 행위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는 듯이 보이는데, 고 송창근 박사의 말을 빌린다면 그들이 反그리스도인들은 아니겠지만 半그리스도인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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