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초기에 나는 잠언 29장18절에 관한 설교들을 들은 적이 있다: "묵시(비전)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망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이 설교들의 요지는 유능한 신앙지도자들이 비전, 즉, 미래를 위한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을 지녀서 교회를 성장시키거나 다른 사역의 결실을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 목표들이 수행되지 않으면 사역들이 지체되고 신앙과 상관없는 것이 되어서 결국 "백성들이 망하게 된다." 다른 맥락에서는 사람들이 생명력을 잃게 되어 망하게 된다는 취지로 설파되기도 했다. 하이벨스는 잠언 29장18절의 비전이 없으면 사람들이 "목표에 집중하여 도달할 수 없고, 꿈을 좇을 수 없다.... 나는 내 두 눈으로 그런 사례를 보아왔다. 비전이 없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있게 만드는 생명력이 소실된다"고 주장한다(Courageous Leadership [2002], 31). 이 비전은 "집중적인 노력을 매년, 몇 십 년 간 유지하는 분명한 소명으로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지속적이며 헌신적인 봉사를 하게 한다." 비전에 대한 이런 개념은 또한 "비전 투사"라는 이름으로 유포되기도 한다("The Art of Vision Casting for Church Multiplication"). '투사'란 추종자들로 하여금 비전을 품고 결실을 맺도록 능력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How to Develop and Cast your Vision"). 비전 투사가 잠언 29장18절과 연결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Vision Casting & Vision Catching"을 보라). 이 구절을 이용해서 기독교 지도자들의 목표에 성경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세 가지 점에서 그릇된 해석이라고 확신한다.
첫째, 이 구절을 이렇게 이해할 때 가장 명백한 오류라고 지적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이해가 전체 구절을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조되고 있다: 후반부가 율법에 순종하는 긍정적 결과를 제시한다면, 전반부는 "비전"의 부족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제시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권위적인 율법을 지킴으로써 복을 경험한다는 말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찬가지로 권위적인 무언가("비전")를 갖지 않음으로써 복의 역전을 경험한다는 말이 된다.
둘째, 이런 방식의 해석이 초래하는 주요한 문제는 히브리어를 번역한 "비전"이라는 용어가 장기적인 목표, 예를 들어, 교회 성장 등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상관없다는 점이다. "비전"이란 용어는 히브리어 '하존'(hazon)의 번역어이다. 이 명사는 구약성경에서 35번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동사 '하자'(hazah)와 연계되는데, 그 뜻은 "보다," 혹은, "계시로 받다"이다. 후자는 선지자가 "비전"(hazon)을 갖는 경우에 사용된다(이사야1:1, 에스겔12:27). 이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계시로 받은 말씀의 내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무엘에게 말씀하실 때, 사무엘상 3장1절은 비전(hazon)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귀했다고 지적한다. 시편 89편19절에서 하나님은 "비전" 속에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이 용어는 또한 몇몇 예언서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사야, 오바댜와 나훔이 그러하다. 이 예언서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것이다. 만일 "비전"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의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예언자를 지시한다면, 이것은 지도자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나 미래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하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계시를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전"(hazon)의 내용은 앞서 제시된 몇몇 유행하는 해석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시를 예언자들에게 부여하는 통로인 것이다. 이 용어는 특별계시를 지시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예언적 말씀, 즉, "묵시"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비전"은 이 구절의 후반부에 있는 "율법"과 적절한 평형관계를 형성한다.
마지막으로, "망한다"로 번역된 단어는 동사 '파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내버려두다," 혹은 "풀어주다"는 뜻을 가진다. 이 동사를 '망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사용된 다른 15번의 용례를 고려할 때 그것들과 상응하지 않는다. 이 용어는 레위기 10장6절과 21장10절에서처럼 애도의 표시로서 머리쓰개(터반)를 벗었을 때처럼 '머리의 덮개를 벗기다("풀어주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출애굽기 32장25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통제하던 도덕적 규율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풀려났다." 즉, 그들은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간 동안에 도덕적 절제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 구절이 바로 잠언 29장18절의 배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동사는 방임하다의 의미, 즉, 도덕적 통제의 제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잠언의 구절은 '특별계시가 없을 때 사람들이 도덕적 통제를 벗어버린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들은 복을 받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계시가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규율을 벗어버리지만, 지혜의 가르침에 주의하는 자들은 복을 받는다"(NIV, HCSB, ESV, NKJV 등에서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매우 신학적이며 실천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이스라엘 백성의 도덕적 상태와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알고 복종하는 지와의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도덕적 상태와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알고 복종하는 지와의 사이에도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것이다.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logs/theologically-driven/a-re-vision-of-proverbs-29-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