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빛을 띤 조그만 알약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경향신문>은 23일 "청와대는 지난해 12월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인 한국화이자제약의 비아그라를 60정(37만5000원) 구매했고, 같은 달 비아그라의 복제약인 한미약품 팔팔정 50밀리그램을 304개(45만6000원)도 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태반주사', ‘백옥주사' 등이라고 불리는 영양·미용 주사제를 대량으로 구입했다고 덧붙였다.
국가원수의 건강은 한 나라의 명운과 직결돼 있다. 따라서 어느 나라든 국가원수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최고의 의료진들이 상시 대기한다. 그러나 청와대가 사들인 약제는 사뭇 그 용도가 의아하다.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알려져 있다. 팔팔정이란 약은 말 그대로 약의 화학식을 복제해 만든 약이기에 비아그라나 마찬가지다. 또 영양·미용 주사제를 다량 사들인 점도 의심스럽다. 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국가원수란 자리는 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수반되는 자리다. 이런 이유로 종종 격무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비극이 벌어진다.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 임박한 시점인 1945년 4월 뇌출혈로 서거했다. 1998년 총리에 오른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도 2000년 4월 총리직 수행 중 뇌경색으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다음 달인 5월 사망했다.
이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일도 벌어진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 수행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나머지 각성제인 암페타민에 의지했다. 그의 주치의는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 그는 1947년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처칠이 낮에는 암페타민으로 버티고 밤에는 진정제로 잠들었다. 처칠은 더 이상 사고가 비옥하지 않고 충만하던 정신은 고갈되었다."
처칠이 암페타민에 의지한 사실은 그러나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다. 당시는 전쟁 수행과 뒤이은 전후처리에 집중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처칠의 건강상태가 외부에 알려지면 영국은 물론 연합국의 공동전선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만약 루즈벨트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 임박한 시점이 아닌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세상을 떠났다면 큰 물줄기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거짓에 익숙해진 청와대,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
박근혜 대통령은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최고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혹시라도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이 나라가 위태해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사들인 약제를 보면 과연 그가 자신의 건강보다 피부미용에 더 신경 쓴 건 아닌가 의심스러워진다. 더구나 발기부전제를 국민 세금을 들여 사들였다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사실 청와대가 비아그라를 사들인 것 보다 더 위중한 건 이날 김현웅 법무부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시한 일이었다. 법무부장관은 검찰 수사결과를 가장 먼저 접하는 자리고, 민정수석은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총괄하며 대통령을 보좌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들이 사의를 밝힌 건 박 대통령에겐 치명타다. 더구나 검찰이 박 대통령을 최순실 게이트의 공모자로 특정하고 입건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법률적 방어를 해야 하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사표 수리와는 무관하게 관련 부처인 법무부장관과 민정수석의 사의가 더욱 뼈아플 수밖엔 없다.
그러나 국민세금으로 미용·영양주사와 비아그라라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약제를 사들인 건 여론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이 약제들을 사들인 시점이 2014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였다. 이 시기는 세월호 참사 발생 시점과 겹친다. 특히 박 대통령은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행적이 묘연했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그의 행적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가정하기도 참담하지만, 그럼에도 사실에 근거해 참사 당일 그가 대통령으로서의 직무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보내고 있었다고 추론해 본다면? 만약 사실이라면 상황은 파국이다.
상황이 이토록 위중함에도 청와대는 변명에 급급한 모습이다. 청와대는 <경향신문> 보도가 나간 당일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제이기도 하지만 고산병 치료제이기도 하다"며 "아프리카 순방시 고산병 치료를 위해 준비했는데 한 번도 안 써 그대로 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의 해명은 더욱 기가 막힌다.
기자는 올해 1월 케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현지 사역 중인 선교사는 기자에게 "방문 전 황열병 주사 처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을 뿐 비아그라와 관련한 조언은 없었다. 그리고 비아그라가 고산병 치료제로 쓰이는 근거도 없다. 비아그라를 개발한 화이자사도 "비아그라가 고산병 치료제로 사용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간단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쉽게 거짓으로 드러날 해명을 정부 기관, 그것도 국가 최고 권력기관이 내놓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008년 이후 민감한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정부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이치에 닿지 않는 해명을 내놓으며 공분을 사는 일이 잦아졌다. 강남 대형교회 장로이며 가훈이 정직인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이런 일이 횡행한 건 참으로 역설적이다.
청와대가 비아그라를 사들인 일은 AP통신, <가디언> 등 주요 외신들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다. 지금처럼 대한민국 국민임이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정녕 국민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기려고 대통령 한 것인가? 국민으로서 실로 자괴감이 드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