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올 때 우리 팀의 음악과 내가 작업했던 음악을 하드디스크에 담아 가져왔다. 우리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분이 계시면 소개해드리려고 준비했던 것인데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당시 한창 주가를 날리던 개그맨 김정식 선배님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지만 그 때는 진짜 잘 나가던 ‘밥풀떼기’ 김정식이었다. 그 때 한창 뵙다가 연락이 끊겼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후 뉴욕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잘 나가던 개그맨에서 전도사님이 되기까지의 신앙과정과 장애인사역을 비롯한 그 간의 해 오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서로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변한 것에 대해 감격하고 감사를 드렸다.
김정식 전도사님의 소개로 후배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후배라는 분이 우리의 연주를 보고 누군가를 소개하겠다고 나섰다. 피아노를 치시는 분인데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피아노 연주자이며 교수님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의 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저녁식사 약속을 잡았다.
서로 즐겁게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자리에서 우리의 음반과 소개자료를 건네드리며 한 번 살펴볼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왠지 내 마음이 찜찜했다. 사실 내일이면 우리는 뉴욕을 떠날테고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데, 이 분이 우리의 음악을 언제 들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식사가 끝날 무렵 무례할 수도 있겠지만 식사 끝나는 대로 그 분의 집으로 가서 같이 음악을 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마침 집이 가까우니 그럼 같이 가자고 흔쾌히 허락을 하셔서 같이 그 집으로 가게 되었다.
집은 맨해튼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두 내외가 단촐하게 살고 계셨다. 집안구경은 할 틈도 없이 가지고 간 음악과 영상을 보여드리기 위해 컴퓨터를 연결하였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전자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인 우리 팀 김신형집사의 개막식 연주장면과 그 밖의 장소에서 연주했던 동영상을 보여드리고 그 동안 내가 작업했던 음악을 들려드렸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우리의 음악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리고 미국시장으로 도전하고 싶은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였다.
그 분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음반회사 중에 다섯 곳을 알려 줄 테니 어느 음반회사가 필그림앙상블과 가장 잘 어울릴 것인지 연구해 보아라…그리고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 내게 이야기하면 그 음반회사와 연결시켜주겠다. 음악을 들어보니 많은 가능성이 있겠다. 미국이 문을 활짝 열고 너희의 꿈을 펼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하고 실패하는 건 너희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날 밤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며 이런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자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 자신의 부족함이 더욱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 맡기고 이제 우리는 도전하는 일만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도전이 무모하지 않으려면 더욱 더 실력을 쌓아야겠구나’
우리는 마른 하늘을 보며 비 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는데 이제 저 멀리 작은 구름 조각 하나라도 보는 느낌이었다. 이제 저 구름조각이 하늘을 뒤덮고 큰 비를 내리리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훈련을 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우리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그 분께 감사를 드리며 뉴욕을 뒤로 하고 텍사스로 향했다.
다음의 목적지인 텍사스의 킬린이라는 곳을 가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를 가이드해주시는 장로님의 댁으로 가기위해서였다. 거기서 우리는 한국식당에 갔는데, 식당에 많은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알고보니 이곳은 커다란 군부대가 있는 군사도시였다.
우리가 미국 연주여행 중에 놀랐던 것은 어딜 가나 한국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글간판이 항상 눈에 보이니까 미국이 한국처럼 가깝게 다가왔고, 가끔은 외국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의 한 지점에 있다는 착각도 들었다. 새삼 우리나라가 많이 성장하였다는 생각이 들며 뿌듯해졌다.
박장로님은 군인신분이셨기 때문에 그 곳 부대에 우리들을 데리고 들어 갈 수 있었다. 군 부대에 가자고 하셨을 때 우린 우리가 왜 부대에 들어가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가 보니 넓은 조깅트랙도 있고 수영장과 커다란 마트 등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어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그 안에는 작은 전시장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각종 전투기를 비롯하여 탱크, 화포등 전쟁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군이 사용했던 전차도 있었는데 아주 조그마한 크기였다. 저렇게 작은 탱크로 어떻게 싸울 생각을 했을까?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일본군탱크 |
한국전쟁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전투기들도 있었다. 미국을 여행하며 본의 아니게 많은 전쟁관련 기념물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심정은 조금 복잡했다. 정말로 이 세상이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야 할 텐데 우리는 이런 평화를 위해 어떠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든 음악과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모두가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 선한 마음이 되살아 났으면 좋겠다. 악하고 각박한 생각을 하다가도 우리의 음악을 듣고 우리의 음악 때문에 마음이 돌아 서고 하나님이 처음 주셨던 그런 선한 마음으로 바뀐다면 이 세상이 평화로워 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저희가 이런 마음을 품고 연주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뜻에 따라 사용 되어지는 저희 필그림앙상블이 되게 해 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