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컬 신학자들은 예수는 민중이라고 할 때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반면, 민중이 예수라는 관점에 대해선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날도 그랬다.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열린 한국민중신학회 정기 세미나에 발제자로 나선 성공회대 권진관 교수(KSCF 이사장)가 ‘예수, 민중의 상징’이란 발표를 마치자 이런 논쟁이 주를 이뤘다.
참석한 한 에큐메니컬 신학자는 “예수는 민중의 상징이라고 보는데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민중이 예수의 상징이라고 보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예수는 민중의 상징이란 등식과 민중이 예수의 상징이란 등식 간에 무게감이 다르다는 얘기다.
‘예수는 민중이다’라고 할지 ‘예수는 민중의 상징’이라 할지 제목 선정부터 애를 먹었다는 권진관 교수는 “상징이란 의미는 참여적 성격을 띤다”며 “예수는 민중의 상징이라고 할 때 그 참여적 성격의 농도가 굉장히 짙은 반면에 민중은 예수의 상징이라고 할 때는 그 농도가 매우 옅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민중은 예수다’는 어렵지 않게 개념을 정리할 수 있지만, ‘예수는 민중이다’란 개념 정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줬다.
권진관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예수가 민중의 상징’이란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하나는 민중을 위한 상징으로서의 예수는 하나님을 설명하며 동시에 민중을 설명한다는 것. 그는 “예수는 민중과 하나님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며 “예수는 하나님에게 어떻게 복종하고 그 사명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모범이다. 예수는 민중의 영원한 스승이고 구원의 원천자다. 민중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요. 전거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하나는 예수의 삶 속에 민중의 고난의 삶이 참여한다는 것. 권 교수는 “고난 받는 민중은 예수 안에 참여한다는 믿음이 육화의 비밀이며 민중신학의 요체이다”라며 “그리스도가 민중 속에 육화한 이유는 민중이 그리스도화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또 “예수가 민중의 상징이라고 할 때 이 말은 고난 받는 민중의 속성이 예수 안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것은 예수가 우리 인간의 본성에 참여했듯이 우리의 인간성도 신성에 참여하게 되어 인간성이 신처럼된다는 초기 기독교 교부인 아레니우스의 구원론과 일치한다”고 했다.
이밖에 ‘민중이 예수의 상징’이란 말에는 “상징인 가리키는 대상 그 자체, 즉 예수일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상징이 매개가 되어 대상 즉 예수가 드러난다”고 했다. 권 교수는 “상징은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며 “지지리도 못난, 가난에 찌든, 못난이들, 힘없고, 능력 없고, 빽없는 자들..이렇게 표면적으로 볼 때 민중은 예수일 수 없다. 그러나 삶의 깊이의 차원에서 보면 이들의 모습에서 예수가 보인다”고 했다. 그들의(민중의) 집단적인 움직에서, 그들의 외침에서 예수를 만날 수 있으며 심판자요 구원자인 예수는 가난한 자들 속에서 숨어계시며 현존하며 심판과 구원의 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날 참석한 에큐메니컬 신학자들은 권 교수의 ‘민중은 예수의 상징’이란 주장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부분이란 점에도 의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