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부분은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하신 말씀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지 않더라도 최소한 몇 마디는 기억한다. 성찬식을 할 때 자주 듣는 말들이지 않는가? "이것은 너희에게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리고 "이 잔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내 피니 새로운 언약이라." 하지만, 최근에 내가 최후의 만찬,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건을 기술하고 있는 누가복음 22장을 다시 읽어보았을 때, 이런 익숙한 말들에 덧붙여 예수께서 하신 다른 말씀들 때문에 놀란 적이 있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탁에 자리를 잡은 뒤에 예수께서는 이런 말을 꺼내셨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22:15). 예수께서는 상상불허의 지독한 고통을 목전에 두고서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있기를 진지하고 강하게 소망했던 것이다. 비록 그에게 닥칠 고통이 점점 가까이 올 때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분명하게 밝히기는 했지만(41-44절), 자신의 제자들, 자신이 가장 가까이 지냈던 지상의 인간 친구들과 함께 있을 필요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께서 자신의 가장 암울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에 제자들과 함께 있고자 강하게 소망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런 소망은 제자들이 보인 불완전한 모습을 고려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그들은 누가복음22장에 묘사된 대로 최후의 만찬 뒤에 이어진 사건들에서 불완전한 모습들을 드러냈다. 예수께서 임박한 고통에 대해서 말하자 그들이 보인 즉각적인 반응은 공감이 아니라 그들 중 누가 예수를 배반하게 될지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23절). 바로 뒤 이어 그들 중 누가 가장 높은지에 대한 언쟁이 벌어졌다(24-30절). 이후 예수께서는 혼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그들은 기도하는 대신에 잠에 빠졌다(39-46절). 유다는 그를 배반했고(47-48절), 베드로는 그를 부인했다(54-62절). 그들의 행동에서는 큰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친구를 격려하거나 힘을 돋우어주려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제자들의 이러한 약점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잘 알고 있던 예수께서는 그의 인생에서 이처럼 무서울 정도로 참혹한 시점에 그들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누가복음 22장의 기사에서 나는 너무 놀랍고 특이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를 그들의 현재 모습 그대로 사랑하면서 그들과 함께 있기를 강하게 원했다. 사실은 제자들이 예수를 더 필요로 했을 상황인데 말이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필요로 했다." 아니면, 최소한 그분은 이러한 격심한 고통과 투쟁의 자리에 그들이 그와 함께 있어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성숙한 신앙을 갖고 있었기에 함께 있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결점과 약점을 갖고 있었기에 그들과 함께 있기를 소망했다. 왜냐하면 그들이(유다는 예외이겠지만) 함께 있어줄 정도로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께서 나의 모든 불완전함과 결점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하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위안이 되고 놀라웠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나 불완전하고 결점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 비록 제자들이 이 깊은 고뇌의 현장에 예수와 함께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에 대해 실제로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인지한 것들에 더 많이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배신당할 것이라는 사실보다 그들 중 누가 예수를 배신할 것인지를 더 염려한 것처럼 보였다. 지상에 살았던 가장 위대한 인간과의 마지막 시간 동안 그들은 그들 중에서 누가 가장 큰지에 대해 언쟁을 벌였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홀로 기도하는 동안 그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했을 때, 그들은 골아 떨어졌다. 영원한 결과를 초래할 엄중한 사건들이 그들 주위에서 발생하고 이 사건들의 중심에 계신 분 앞에서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의 의미와 예수와 함께 있는 특권을 놓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예수께서 나와 함께 있기를 간절히 원해서 나를 그분 앞으로 얼마나 자주 초대했는데 나는 고작 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며 말하고만 있었던 것을 깨달을 때 나는 무척 슬퍼진다. 나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심오하며 지속적인 의미를 지니는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주셨고 나를 위해 피를 쏟으셨다. 그분은 기꺼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이것만으로도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이 하시는 말씀과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는 특권을 영원히 누리는 기회의 가치를 깨닫기에 충분하지 않는가?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logs/the-good-book-blog/true-communi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