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예장 목회자 시국기도회'에서 본지 논설주간인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분노할 때와 개혁할 때'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 원고를 입수해 중요한 대목을 발췌 인용한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온 서 명예교수는 1988년 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이른바 88선언의 주역이었다. 편집자 주]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습니까? 촛불 광장에서 부르짖는 우리 민중들의 소리입니다. 내가 이 나라가 이 꼴이 되는 걸 보려고 이렇게 오래 살았습니까? 나는 1987년 6월, 29년 전 새문안 교회에 모인 우리 목사님들 앞에서 전두환은 물러가고,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개헌을 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다시는 우리 목사님들이 비상시국기도회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 살아생전에 대통령을 탄핵하고 하야시켜야 한다는 설교나 연설은 두 번 다시 안 해도 되고, 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살아가지고 이런 화나는 일을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살아 움직이는 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순교자 아버지는 공산당 독재를 반대하고 그렇게 설교하다가 목숨을 바쳤습니다. 저는 순교자 아버지의 뜻을 이어 유신독재를 반대하고 투쟁했습니다. 참된 반공이라고 하는 것은 민중을 억압하고 굶어 죽게 하는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유신 독재를 반대하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 독재를 반대하는 것이고, 이 땅에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반공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말살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반공은 반인간적이며 반민주주의이며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 질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러려고, 이렇게 되라고 이 나라 이 땅을 이런 꼴로 만들려고 반공을 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 목요일인 12월 1일, 바로 이 자리에서 한국 기독교 민주화운동 기념재단을 결성했습니다. 우리가 이러려고 1970년대 민청학련 사건으로 몇 백 명의 학생들이 재판을 받고 감옥생활을 했는가? 눈물을 흘리면서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반공의 이름으로 이런 만행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이 남산에서, 보안사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물탱크에 처박혀서 폭력과 압제와 독재의 더러운 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매를 맞고 피를 흘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까? 우리의 믿음의 조상 함석헌 선생과 서남동 목사, 이우정 선생 등은 1975년 3월1일 명동 성당에서 유신 정권을 규탄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부르짖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 어른들이 그 많은 고초를 당했습니다. 그 아픔과 고초의 댓가가 오늘의 박근혜 게이트입니까?"
"민주주의는 박근혜의 철학도 정신도 아니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박근혜는 한국 정치를 비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기가 누리는 권력이 아버지로부터 온 줄로 착각했습니다. 자기가 먹고 입고 즐기는 모든 것이 아버지 덕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권력으로 재벌들의 돈을 마음대로 빼앗고 나라 좋은 일을 한답시고 가까운 친구 최순실과 그 가족과 패거리들의 배를 불리고 재산을 늘려 주었습니다. 그러고도 자기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나라를 위해서, 창조경제를 위해서 애쓴 것 밖에 없다며 억울하다고 눈물을 보이고 있습니다. 요새 말로 개념이 없는 사람입니다."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역사적으로, 민족적으로 박근혜는 범죄자입니다. 법정에 서야 하고 법적 판결을 받아 죄과를 치러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회가 탄핵을 하기 전에 이미 광장의 국민들은 박근혜를 탄핵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대통령이 없습니다. 지금 광장의 민중의 소리는 박근혜를 앞세워서 박정희 유신 체제를 모시고 떠 받들어 온 새누리당과 극우 반동 세력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중략) 남한의 교회는 반공의 이름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기독교 정권이라고 교인들을 호도하고, 정교분리라는 허구와 왜곡으로 이승만 정권의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 침묵하고 오히려 지지하고 응원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과 유신정권을 위해서 조찬기도회를 열고, 모든 정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복종하라고 설교한 한국 장로교회 목사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5.18광주 민주혁명을 탄압하고 몇 천 명을 학살한 신군부 장군들의 살인죄를 덮어 주고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한 목사들과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광장의 목소리와 아우성을 들어라
"최태민 목사라고 하는 사이비 기독교 목회자를 양산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기복신앙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왜곡해 천민자본주의, 돈과 맘몬을 섬기는 우상 숭배의 기독교로 만들어 최태민 목사 같은 가짜 목사를 만들어 낸 책임을 오늘의 한국교회가 져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정의를 설교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설교하지 않습니다. 돈과 권력과 성공, 3박자 축복만을 위해서 교인들을 대형교회로 몰고 왔습니다. 한국교회가 오늘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만들어낸 주범입니다. 하나님 앞에 통렬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 통합교회는 그동안 너무도 개인의 믿음만 강조하고 개교회 성장, 교인 늘리기에만 정신을 썼습니다. 정교분리 원칙이라는 허구에 갇혀서 정치가 문들어지게 썩어가고 있는데, 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고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터뜨리고 있는데, 교회는 교회 안에 교인들을 가두어 두고 개인이 예수 믿고 교회 나와서 헌금하면 천당 가고 구원 얻는다는 마취약과 진통제만 팔아 왔습니다. 이제 밖을 내다볼 때가 왔습니다. 광장의 목소리와 아우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돌이켜보고 신학을 다시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치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정치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면서 불의한 정권을 지지하고 편들고, 부패한 정권과 함께 썩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과 정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는 그리스도인, 그 말씀대로 정치하는 나라를 만드는 하나님의 혁명적 정치에 참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낸 일은 이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시려고 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 분노의 밤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아침이 되어 밝은 햇빛이 비치게 되면 새날을 준비 해야 하겠습니다. 어두운 역사, 귀신이 들끓는 암흑의 역사와 혼돈과 분노와 고통으로 울부짖는 역사를 뒤로 하고 광명의 역사,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