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천주교주교회의 “탄핵은 헌정 질서 돌아볼 기회”

7일 성명 내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당위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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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시민사회는 물론 종교계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6차 범국민대회.

국회가 오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표결처리할 예정인 가운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7일 "탄핵 절차가 진행될 경우, 대한민국은 국가원수 궐위사태를 맞게 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주교회의는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통령의 명백한 범법 행위나 초헌법적인 범죄 행위가 인정될 때 국회의 탄핵 절차를 거쳐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할 권리가 국민에게 있음을 인정한다"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주교회의는 또 "지금 대한민국은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 붕괴로 말미암아 국가의 위상이 추락하고 경제가 마비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지도자의 지도력이 이렇게 추락하기까지 이를 방관하고 조장한 정치권은 우선 국민 앞에 깊은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 천주교회는 국민들과 함께 성숙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시대의 징표를 놓치지 말고 예민한 식별력과 예언자적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한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주교회의는 추기경이 속한 가톨릭의 대표기구이기에, 가톨릭교회의 이번 입장 천명은 박 대통령 탄핵 여론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아래는 주교회의의 성명 전문이다.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

한국 천주교회는 대통령과 소수 측근의 국정 농단 사태로 국민 주권과 법치주의 원칙이 유린되는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현 상황을 깊이 우려하며, 대통령 탄핵 정국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입장을 천명한다.

1. 국민의 대통령 퇴진 요구는 정당하다

민주주의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대통령은 국민에게서 국가의 주권을 위임 받은 대리자이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발표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에는 이러한 위임받은 대리자로서의 인식과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공복의 책임감이 철저히 결여되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 4년 국민의 고통과 울부짖음에 눈과 귀를 막고, 극소수 특권층의 인의 장막 안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하였다. 이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을 무시한 봉건시대의 제왕적 처신이다.

수차례에 걸친 촛불집회는 수많은 아픔과 희생 위에 세워진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국민의 몸부림이다. 교회는 인간의 존엄과 공정을 선포하고 모든 이가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우리 국민들이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비폭력 시위를 적극 지지한다. 이러한 모습은 전 세계와 후손들에게 깨어있는 민주주의의 시민 정신을 증언하는 역사적 기록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과 6·10 민주 항쟁의 역사적 파랑 속에서 민주주의의 전통을 쌓아올리며 불의한 권력을 평화적으로 쇄신시킨 성숙한 정치적 시민 의식을 보여주었다. 이제 대한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기록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함께 행동하는 국민들의 하나된 목소리를 진정으로 엄정하게 받아들인다면 대통령은 자신의 퇴진에 관하여 정략적 타산으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아야 한다. 국민 모두로부터 불신임당한 현 시국은 그 자체가 불안정이고 무질서이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국민은 이미 질서를 위한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질서는 외형적 조직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보다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울 때 참되고 견고한 질서로 탄생한다.

2. 국회는 당리당략보다 국가와 국민을 걱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통령의 명백한 범법 행위나 초헌법적인 범죄 행위가 인정될 때 국회의 탄핵 절차를 거쳐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할 권리가 국민에게 있음을 인정한다.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국회는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탄핵소추권을 행사할 의무가 있다.

탄핵 절차가 진행될 경우, 대한민국은 국가원수 궐위사태를 맞게 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 붕괴로 말미암아 국가의 위상이 추락하고 경제가 마비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도자의 지도력이 이렇게 추락하기까지 이를 방관하고 조장한 정치권은 우선 국민 앞에 깊은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가슴에 새기며 더 이상 당리당략에 치우친 근시안적 모면책을 강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정치권은 정략적 계산과 이해득실을 뛰어넘고 함께 힘을 모아 국가의 신뢰를 회복하며 국민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국가 통치 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해 초당적인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은 이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여 국정과 민생이 하루빨리 정상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국민의 깨어있는 눈과 수백만 개의 촛불로 대변되는 성난 민심의 요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사와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결단을 내리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한국 천주교회는 국민들과 함께 성숙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시대의 징표를 놓치지 말고 예민한 식별력과 예언자적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한다.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하느님의 축복을 기도한다.

2016년 12월 7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정의평화위원회)
위원
강우일 주교 (생태환경위원회)
김운회 주교 (사회복지위원회) 정신철 주교 (교육위원회)
옥현진 주교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유경촌 주교 (매스컴위원회)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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