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구세군은 15일 오전 보도자료를 전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날 오후 3시 경 명동 밀리오레를 찾아 30분간 자선냄비 특별모금 행사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취재 및 좋은 기사 부탁한다"는 당부도 적혀 있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됨에 따라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맡게 됐다. 그런데 시민사회에서는 그에 대한 사퇴 요구가 높다. 6차례의 범국민행동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황교안 체제는 탄핵당한 박근혜 권력의 연장"이라며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황 대행은 이 같은 사퇴 요구를 일축하듯, 군부대·일선지구대 방문 등 일방향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엔 국회를 찾아 정세균 국회의장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정 의장은 여·야·정 협의체 운영에 대해 검토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대해 황 대행은 즉답을 피한 채, "어렵고 엄중한 시기에 무거운 책임을 맡게 돼 아주 정말 힘들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황 대행이 정국 주도권을 계속 장악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황 대행은 이전부터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실제 사법고시 합격 뒤 2년간의 연수기간 동안 수도침례신학교 3학년으로 편입해 신학공부를 한 뒤 서울 목동 성일침례교회에서 협동전도사로 시무한 이력이 있다. 또 <종교 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 <교회와 법이야기> 등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이력으로 인해 법무부 장관, 총리 임명 과정에서 종교편향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문제는 그가 보인 행보가 기독교 정신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신앙관은 2011년 5월 부산 호산나 교회 특별강연에서 엿볼 수 있다. <경향신문> 보도로 알려진 이 강연에서 황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재야활동을 하며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조사를 받는 등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던 검사들이 전부 좌천됐다. 공안부 검사뿐만 아니라 공안통으로 불린 검사들이 계속 인사 불이익을 당했고, 결국 검찰을 떠났다. 난 이런 와중에 편안하게 푸른 초장에서 사법연수원생들과 놀면서 지냈다. 그 때 하나님께 감사했다. 미련한 내게 환란으로부터의 도피성을 허락해주심을 감사드렸다. 사법연수원 교수가 한직이고, 자신이 원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도피성이 됐음을 깨닫게 됐다."
요약하면 김대중 정권 들어서면서 이른바 ‘공안검사'들은 좌천됐지만 자신은 믿음에 힘입어 ‘도피성'에 거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황 총리가 검사시절 소위 잘 나가는 검사는 아니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시사저널>의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황 총리는 검사시절 2006년, 2007년 두 해 연속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는가 하면, 국정원 X파일 사건을 수사하면서 압수수색도 없이 무혐의로 결론 내는 등 수사에 많은 허점을 드러냈었다.
두 차례 과잉의전 구설수, 기독교 전도사 맞나?
그는 총리에 임명되고 나서는 과잉의전으로 두 차례나 구설수에 올랐다. 먼저 지난 달 28일 경찰이 KTX오송역에서 승객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던 버스를 내쫓는 일이 벌어졌다. 오송역에 도착한 황 총리를 의전차량에 태우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이에 앞서 3월엔 황 총리가 탄 의전차량이 서울역 플랫폼 내부에 진입하는 일도 있었다. 이를 두고 여론은 비뚤어진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갑질'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이태경 토지정의연대 사무처장은 서울역 플랫폼 소동 직후인 3월23일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황 총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눈길을 끄는 건 황교안 총리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이다. 황 총리의 신심(?)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중략) 그런데 황 총리가 오매불망 사모하는 예수와 다른 점이 있다. 예수께서는 지극히 낮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고, 가장 비천한 자들과 함께 생활하시다, 최악의 모욕과 고통 속에 죽으셨다. 그런 예수를 따른다는 황 총리는 시민들이 보기에 군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황교안 총리에게 묻고 싶다. ‘예수의 제자가 맞나?'"
전도사 이력도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 기자는 그가 총리후보로 지명된 지난 해 5월 성일침례교회와 접촉한 바 있었다. 이때 교회 측은 그의 전도사 이력에 대해 "성경 대학에서 말씀 양육을 맡은 게 전부"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구세군 홍보부는 황 대행 측이 먼저 이벤트 참석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세군으로서는 이 같은 제안을 거절할 입장은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쳤다. 정히 황 대행이 고위공직자로서 선행을 하고자 했다면 은밀히 했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황 대행은 숱한 구설수에 시달렸고, 현 시국에서도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선 인물이기에 처신에 신중해야 했다. 그럼에도 버젓이 종교행사에 참석해 이벤트를 벌이겠다고 먼저 제안한 건 "황 대행이 대통령처럼 행세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에 더욱 힘을 실어줄 뿐이다.
이와 관련, 구세군 측은 "황 대행의 이벤트 진행을 두고 찬반 의견이 대립했지만, 그 어느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자선냄비의 가치이자 정신이라는 데 합의가 이뤄져 황 대행 측의 제안을 수용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