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대한문 광장은 온통 태극기 일색이었다. ‘대통령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탄기국)이 이날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는데, 참가자들이 일제히 태극기를 흔든 것이다.
참가자들은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50대로 보이는 이들도 보였지만 수자는 많지 않았다. 이들은 집회 내내 ‘탄핵 기각', ‘탄핵 무효'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 뜻을 드러냈다. 그런데, 집회 중간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권사님, 이리 와요."
"OO 권사님은 어디 있어?"
"사람이 너무 많아 못찾겠어요."
대화를 나누던 분들에게 다가가 몇 가지를 물었다. 이들은 60대로 보이는 여성들로 서울 중구의 A교회에서 왔다고 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교회였다. 혹시 집회에 참여하라는 지시가 있는지 물었다. 이들은 그런 지시는 없었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음을 강조했다. 다른 교회에서도 많이 나왔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 17일 박 대통령을 추종하는 단체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서도 여의도 OOO교회, 이촌동 △△△ 교회 등 대형 보수교회 신도들이 참여했다. 이들 역시 A교회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인 참여'을 강조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정지된 상태다. 그리고 특검은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 대통령의 뇌물죄를 정조준하고 있다. 한련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음에도 촛불의 기세는 여전하다. 24일 서울 광화문에만 60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그만큼 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은 권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법률 대리인단을 통해 낸 답변서를 통해 "국회의 탄핵 결정은 부당하고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추종하는 지지세력을 결집시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17일과 24일 열린 대응집회는 바로 이런 의도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보수 기독교계, 박 대통령의 피난처?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이 불거지면서 유난히 보수 기독교계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11월7일 극동방송 김장환 이사장과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를 만나 조언을 듣는가 하면, 탄핵을 9일 앞둔 11월30일엔 인천 순복음교회 최성규 목사를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임명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박사모 회장이 극동방송 김 이사장을 만나 기도회를 요청했다는 정황도 불거졌다.
직무정지된 박 대통령이 교회에 손 내미는 모습은 어쩌면 절박감의 표현일 수 있다. 아직 보수 대형교회가 조직적으로 박 대통령 지지집회 참여를 독려했는지의 여부는 확인이 더 필요하다. 집회 때 만났던 A교회 신도들처럼 정말 대통령을 걱정하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왔을 수도 있다. 문제는 약자의 아픔보다 권력자의 심기를 더 먼저 고려하는 생리다.
그간 교회, 특히 보수 대형교회는 부자나 권력자에겐 관대했지만, 유난히 사회적 약자에게는 가혹했다. 세월호 참사만 봐도 그렇다. 세월호 유가족 가운데에는 교회에 출석해온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교회는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보다 불편해 했다.
일부의 문제를 보수 기독교, 더 나아가 기독교계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 바라보는 일일 수도 있다. 분명 지적해야 할 점은, 상처 받은 이들보다 권력자를 감싸고 나서는 건 분명 기독교 정신을 거스르는 일이다. 따라서 그 어느 누구라도 자발적이든 지시에 의해서든 기독교인이 이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