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복음주의는 명사들의 문화와 번영신학에서도 발견될 수 있기 때문에 복음과 번영은 주요하게 갈등하는 요소들로 비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헨리 스쿠걸의 『인간의 영혼을 입으신 하나님의 삶』은 통찰력이 돋보이고 설득력이 있다.
예수님은 엄청난 수의 물고기가 제자들의 그물에 잡히도록 하셨고 성전세를 물고기로부터 얻어내게 하신 분이므로 쉽사리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아니, 돈이 없더라도 시저를 권좌에서 밀어냈을 만큼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실 수도 있었고, 떡 몇 덩어리와 물고기 몇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신 일을 여러 번 실행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이 세상의 즐거움을 얼마나 작게 평가하셨는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실 정도로 너무 가난하고 초라한 형편에서 살기로 결정하셨다. 그분은 왕궁을 들락거리지 않았고 지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유력인사들과 사귀지도 않았다. 그저 목수의 아들로 알려진 대로 곁에 어부들이나 여타 가난한 사람들을 친구로 두었고 그렇게 초라한 여건에 맞추어 사셨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실 수 있으나 하지 않으셨던 많은 일들, 그리고 예수께서 실제로 하지 않으셨던 너무 많은 일들을 하려고 바둥거리다가 성취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제자로서의 삶을 살려고 하면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 (그분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분의 행적에 익숙해지는 것이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절차일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가 말한 대로 빈곤한 삶에 대한 소명이 아니라 제자로서의 삶에 대한 소명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름으로써 자신에 대해 죽는 삶 속에 예수의 삶이 드러나게 되도록 살게 하는 소명인 것이다.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logs/tim-brister/how-jesus-did-not-pursue-celebrity-and-prosperit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