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과 예술] 바라봄의 길

김문선 목사(<생명의 망 잇기> 사무국장)

<눈 먼 소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명화 눈먼 소녀
(Photo : ⓒ 김문선)
▲<눈 먼 소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눈 먼 소녀와 그녀의 동생이 황금 들녘에 앉아있다. 소나기가 지나고 쌍무지개가 떴다. 동생은 신비한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한다. 언니의 손을 붙들고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전하고 있다. 눈 먼 소녀의 마음은 어떠할까? 볼 수 없는 자신의 눈과 인생을 탓하며 슬퍼했을까?

눈 먼 소녀의 신비로운 표정이 "아니!"라고 답하는 듯하다. 자신은 눈이 멀었지만 성한 눈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깊고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녀의 한쪽 손은 풀 한 줌을, 다른 한쪽 손은 동생의 손을 포근히 쥐고 있다. 피부 끝으로 전해지는 사람과 자연의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 그녀의 코끝은 촉촉이 젖은 풀 향기에 취해 있다. 소리로 들리는 동생의 감탄과 새소리, 바람소리가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볼 수 없기에 더 많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영성을 소유한 소녀이다. 이를 증명하듯, 나비 한 마리가 살랑살랑 애교를 부리며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다.

보기 위해 존재하는 '육신의 눈' 때문에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나에게 보이는 것을 전부라 여기니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기 위해 마음을 열고 감각을 곤두세우는 관찰의 자세가 부족하다. 하나를 깊게 바라볼 수 없는 시선의 분주함이 사람과 사물, 현상의 진상을 놓치게 만든다. 눈 먼 소녀를 닮고 싶다. 온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진정한 눈을 소유하고 싶다.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진상(眞相)을 보고 싶다. 화폭에 담긴 소녀의 행동이 '바라봄의 길'을 알려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요한복음 9장 39절)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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