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 1-9절은 문학적인 걸작이다. 하지만 고대의 작문 기법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를 것이다.
교차대구법(chiasmus)은 이 구절에서 사용된 기법들 중의 하나이다. 이 기법은 영어의 X자처럼 생긴 그리스 철자 '키'(Χ)의 형태를 따서 명명된 것이다. 평행적인 대구들이 반씩 X 형태로 교차배열되는 것이다. 창세기 11장 1-9절이 교차대구법으로 구성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바벨탑 이야기가 하나님과 인간 간의 세력다툼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기술적 진보를 시기했기 때문에 개입하셨던가? 하나님은 우주적인 파흥자(흥을 깨는 존재)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야기의 문학적이며 문화적인 배경을 배제할 경우에나 그럴 것이다.
이주와 정착에 관한 세부적 묘사(11:2)는 사소한 내용이 아니다. 창세기 초반에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면서 그들을 동쪽 지역으로 흩으셨다. 아담과 하와를 그 방향으로 추방하셨고(3:24) 가인도 동쪽으로 몰아내셨다(4:16). 그러나 여기서 사람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아와서는 그 심판의 결정을 뒤집고 있다(11:2). 평원에 정착한 것 또한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에 반기를 든 행위이다: 하나님은 땅에 충만하라고 아담과 하와에게(1:28), 그리고 노아에게(9:1)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이 쌓아올린 구조물은 단순히 탑만이 아니었다. 학자들은 그것이 지구라트일 것이라고 판단한다. "숭배를 위해 사용되었고," "양태적으로는 이집트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흡사한" 건축물이라는 것이다(Baker Encyclopedia of the Bible, 2198면). 고대인들은 신들이 높은 곳에 산다고 믿었으므로 그들에게 가까울 수 있는 언덕이나 산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 사람들은 평원에 있었기 때문에 산의 대체물로서 지구라트를 건설한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신을 조종해서 하강하도록 한 뒤 예배를 받게 할 요량이었든지, 자신들이 구조물로 올라가서 신처럼 되고 싶어 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그들 자신의 이름을 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모순되게도 하나님께서 내려오셨다(11:5).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내려오셨다(11:7-9).
이 이야기를 이와 같은 배경에다 두고 본다면 하나님은 우주적인 파흥자이거나 인간의 업적을 시기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오히려 그분은 자애로운 창조주-왕으로서 자신의 백성들로부터 사랑과 충성을 요구하고 계신다. 그렇다. 그분은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구원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창세기 12장과 요한계시록은 바벨에서 시작된 신의 구원을 증언하고 있다. 인간이 쟁취하려고 시도했던 바로 그것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선물로 주셨다: 위대한 이름과 민족과 땅(창세기12:1-3). 그러면서 하나님은 다른 민족들을 내버리신 것이 아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동쪽으로부터 가나안으로 불러서 이방민족들에게도 복을 주셨다. 미래를 전망하건대, 하나님은 "모든 족속과 언어와 나라와 백성들"이 와서 예배하도록 부르신다(요한계시록5:9, 14:6). 그분은 그들을 정원이 아니라 그분의 도시,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신다. 그곳에서는 바로 그분이 성전이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21:9-27).
*위의 구조적 분석은 포켈만(J. P. Fokkelman)의 저서 『창세기의 내러티브 기술』(Narrative Art in Genesis)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로부터 개작한 것이다.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ible-study/topical-studies/taking-a-look-at-babel.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