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정체성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염원은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를 지탱해온 두 개의 중요한 기둥들이다. 지금은 태극기와 촛불로 표상되며 서로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결코 어느 한쪽을 삭제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태극기와 촛불을 내세우는 집단 양측이 힘의 논리만을 따르게 되면 각각이 떠맡고 있던 기둥으로서의 역할이 삭제될 수 있다. 그것들이 떠받들고 있던 지붕이 무너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법치의 원칙이 무너지고 국민이 분열되면 그 파국은 자명하지 않은가?
야고보 사도는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야고보서4:11)고 가르쳤다.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법치의 원칙이 무너진다는 말이다.
현재의 탄핵정국에서 태극기와 촛불의 긴장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파국을 염려하지 않는 듯한 정치인들의 행보가 우려스럽다. 소위 대선 주자들이 정국의 격량 속에서 촛불도 꺼트리지 않고 태극기도 휘날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각 정당은 대선 주자들의 개별적인 역할과는 달리 대화를 통한 이익의 조정에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태극기와 촛불로 양분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파국을 막는 길이다. 정치인이 갈등의 조정과 선도의 역할을 그 직무의 명분으로만 내세운 채 당리당략과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는 패거리 정치에 매몰된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