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사망 소식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정남은 현지시간으로 13일 오전 9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마카오행 항공편 탑승을 위해 수속을 밟던 중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에 의해 독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 사망소식은 즉각 안보위기론으로 이어졌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북한 정권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확인된다면 이는 김정은 정권의 잔학성과 반인륜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이어 "북한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추가 도발 등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정치권을 향해선 "한 틈의 안보 공백도 생기지 않도록 법안 추진과 정책 협의 과정을 통해 협조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야권 역시 이번 사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양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15일 국회에서 예정했던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 모집 선언식 일정을 취소했다. 국민의당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즉 사드 반대 당론 철회까지 시사했다.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15일 열린 원내대표단 간담회에서 "변화된 상황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명분은 많이 약해졌다고 생각한다"며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 다시 내부적인 토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북한의 동향은 안보에 파장을 몰고오는 변수다. 따라서 김정남 살해사건에 즉각 반응하는 정치권의 움직임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한반도 안보를 뒤흔들 사안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정남은 1971년 5월 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둘째 부인인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김정일은 김정남을 후계자로 낙점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 입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일이 벌어졌고, 이 일로 김정일 눈밖에 났다는 후문이다. 당시 김정남은 도쿄 디즈니랜드를 가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진짜 목적은 여전히 베일에 둘려싸여 있다.
그는 이후 일본, 홍콩, 마카오를 전전했다. 2011년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오가며 생활했다고 전한다.
김정남, 쫓겨난 귀족에 지나지 않아
중요한 점은 그가 북한 체제에 큰 위협이었나 하는 점이다. 김정남은 북한의 3대 권력세습에 부정적인 입장을 자주 내비쳤다. 또 다른 한편으로 중국이 김정남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다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김정은 체제가 흔들리면 김정남을 대안으로 세우겠다는 의도라는 것이 그 이유다. 실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중국과 관계가 매끄럽지 않았기에 중국의 김정남 비호설은 타당한 가설이었다.
그러나 그가 북한 체제를 뒤흔들 주요 변수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남 살해 소식이 전해진 이후 폴라 행콕 CNN 지국장은 "김정남은 권력 승계에는 관심 없었다. 그는 국제 플레이보이"라고 평가했다. 김정남이 북한 관련 중요 정보를 가진 주요 정보원도 아니었다. 그동안 알려진 주요 경력은 청와대 경호실 격인 호위총국 간부를 거쳐 김정일 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노동당 39호실' 책임자를 거쳤다는 것 뿐이다. 그가 한국은 물론 전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핵, 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주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 미 외교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P)>지도 "김정남은 북한 체제 반대에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던, 단지 쫓겨난 귀족일 뿐이다. 그는 북한 권력층에 진실을 말하지도, 북한 인권상황 개선에 한 점 기여한 적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김정남의 사망을 두고 한국에서는 스파이 소설을 방불케 하는 추측들이 난무한다. 자유한국당 이철우 의원은 "김정남이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독극물로 암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독침설까지 거침 없이 주장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15일 사설에서 "아무리 테러 국가라 해도 이복형까지 독침으로 살해한 것은 공포정치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고 적었다. 그러나 정작 말레이시아 현지 경찰은 그의 사망원인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정남의 사망은 분명 눈길이 쏠릴 수 밖엔 없는 뉴스다. 그러나 섣부른 추측이나 비약은 금물이다. 특히 김정남 사망을 안보위기를 부채질하는 소재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 실제 일부 언론에서는 이 사건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입지가 좁아진 보수세력이 결집할 기회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 관련 뉴스는 국면전환에 더할 나위 없는 카드였다. 특히 보수 정권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북한발 뉴스를 자주 국면전환에 활용해 왔다. 김정남 사망 사건은 따라서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과 궁지에 몰린 보수진영으로서는 호재인 셈이다. 국면전환이 성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 대한민국은 무너진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하는 중대 시점에 놓여 있으며, 김정남 사망사건은 이런 시대적 흐름과 전혀 무관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