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27일 오전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시한 연장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박영수 특검은 오는 28일 수사를 마무리하게 된다.
특검 시한 연장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비단 정치권뿐만이 아니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특검 수사기간 만료일이 다가오면서 시한 연장을 외쳤다. 개신교계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CK) 인권센터는 지난 22일 "다시는 이런 비극적 역사를 반복하려 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더 철저히 진실을 밝히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며 시한연장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황 대행은 "(특검 연장은 수사기간 만료) 당일까지 하면 되고 통상적으로 (만료) 전날 해왔다"며 모호한 입장만 취해왔다. 그러다 수사시한 만료 하루 전 시한 연장 불승인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여러모로 아쉽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조사가 어려워지게 됐다. 박 대통령 측은 청와대 압수수색 및 대면조사를 줄곧 거부해왔는데, 특검 수사시한 만료로 수사망에서 빠져 나가게 된 것이다. 삼성 외에 롯데, SK 등 미르-K스포츠 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다른 재벌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난 19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과 '옷로비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도입된 이후 △ 이용호 게이트 △ 대북송금 △ 대통령 측근 비리 △ 철도공사 유전개발외압 의혹 △ 삼성비자금 △ BBK 실소유주 의혹 △ 스폰서 검사 파문 △ 10·26 선관위 디도스 공격 △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불거졌거나, 검찰의 수사 공정성이 의심됐을 때마다 특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안의 민감성과는 달리 수사 결과는 실망스러웠을 때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출범한 조준웅 특검이었다. 조준웅 특검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차명 자산이 4조 5,000억 규모에 이른다는 점을 밝혀내기는 했다. 그러나 삼성그룹 비자금 출처는 건드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삼성 비리가 노무현 정부로 번지는 걸 막아냈다.
이에 비하면 박영수 특검은 그야말로 ‘역대급' 특검으로 남을 전망이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부터 구속하더니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특혜 의혹과 관련해 남궁곤 전 입학처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이인성 의류산업학과 교수, 류철균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를 구속기소 했다. 특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까지 수사범위를 확대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구속시켰다. 특검의 칼날은 더욱 거침이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영장이 한 차례 기각되면서 동력을 잃는가 했지만 보강수사를 통해 마침내 구속영장을 받아냈다.
그런데, 박영수 특검은 그야말로 예외적인 사례에 속한다. 역대 특검이라고 이 같은 수사성과를 낼 수 없었을까? 아니, 검찰 조직이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바로잡을 수 없었을까?
문제는 ‘수사 외압'
답은 ‘아니오'다. 특검은 당장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꾸리는 한시적 조직이다. 한시적 조직에게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삼성 비자금의 실체를 폭로했던 검사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 역시 특검 보다는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변호사의 말이다.
"나는 애초부터 특검 도입에 반대해 왔다. 검찰이 자체 수사하는 쪽이 더 낫다는 입장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나는 특검 도입을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우리 검찰을 믿는다. 삼성이 뿌린 돈에 오염된 자들은 소수일 뿐이다. 검찰 안에는 깨끗한 검사들이 더 많다. 삼성 비리 수사는 고도의 전문성과 청렴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나는 우리 검찰 안에 이런 수사를 맡을 만한 검사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검찰은 준사법기관이다. 그런데 역대 정권이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사에 외압을 가해온 게 현실이다. 특히 이런 경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심해졌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결국 정치권의 외압만 아니면 검찰은 얼마든지 수사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의정부지검 임은정 검사는 황 대행의 특검연장 불승인 입장이 나오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특검의 맹활약은 위와 같은 초기의 우려를 특검 연장을 요구하는 함성으로 바꾸어놓았네요. 검사들이 정말 수사를 잘하긴 잘 한다며 혀를 내두르는 지인들에게 흐뭇하게 웃으며 '위에서 방해만 안하면 우리는 잘 할 수 있다니까요'라며 답하고 있습니다만, 석달간 쉼 없이 달려온 특검 관계자분들이 많이 지쳐있겠다 싶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마냥 웃고 있기가 미안할 지경입니다."
이제 공은 다시 검찰로 넘어왔다. 그동안 검찰은 정권 유지도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이 검찰의 신뢰회복을 위한 기회일 수 있다. 사실 박영수 특검이 꾸려지기 전 검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었다. 정권이 조직에 심어 놓은 ‘정치검사'들이 수사를 방해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총지휘권을 쥔 황 대행이 검찰 수사를 방해할 우려는 아주 높다.
그러나 아무리 힘센 정권이라도, 엄청난 자금을 앞세운 재벌이라도 검찰 조직 전체를 장악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여전히 검찰엔 정의감으로 무장한 검사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으리라 믿는다. 외압이 우려되면 특수수사본부를 꾸려 수사하면 될 일이다. 특검이 마무리하지 못한 수사를 확실히 마무리해 다시는 국정농단 세력이 암약하지 못하도록 국가 기강을 다시 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게이트 초기에 검찰 수뇌부에서 그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사건 배당으로 수사가 지연되었음을 차마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만, 결국 특별수사본부를 만들어 40여명의 검사를 투입했던 검찰입니다. 역사의 도도한 물결이 결국 둑을 허물어뜨리고 이 땅의 불의를 쓸어내고 있는데, 검찰이 역사의 물결에 몸을 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건이 검찰로 다시 돌아온다면 검찰 역시 사즉생의 각오로 다시 임할 수 밖에 없겠지요. 특검에 파견나간 검사들도 일부 되돌아와 특별수사본부에 합류할테고, 선수 교체 또는 추가 투입을 위해 불펜에서 준비 중인 대규모 병력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 임은정 검사
덧붙이는 글.
끝으로 황 대행은 개신교 전도사다. 개신교 전도사가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위중한 사태의 와중에, 국민이 염원했던 특검시한 연장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점은 심히 유감이다. 황 대행은 하나님의 의로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이런 중요한 발표를 하면서 황 대행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홍권희 총리 공보실장을 내보냈다. 무책임한 태도이다. 자신의 결정이 중차대한 국가대사에 관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분이 개신교 전도사라는 점에 대해 개신교계의 각성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