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의 유산인 '관상 기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 '관상 기도'가 어원학적으로 따져볼 때 플라톤의 신비주의 사상까지 맞닿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구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플라톤은 지성을 중시하는 사상가로 알려졌으나 '향연' '파이드로스' 등 중기 대화록에서는 신비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냈다는 게 성해영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신비주의 전공)의 설명이다.
성해영 교수는 최근 <열린 연단: 문화의 안과 밖>의 강사로 출연해 '영적 훈련의 고전-『무지의 구름』과 관상 기도'라는 제목의 강연을 진행했다. 이 강연에서 그는 신비주의 개념 정의를 비롯하여 기독교 신비주의 유산인 '관상 기도'의 사상사적 뿌리를 찾았다.
그에 따르면, 신비주의라 함은 비교종교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궁극적 실재와 합일되는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의식을 변화시키는 수행을 통해 그 체험을 의도적으로 추구하고 또 체험을 통해 얻어진 통찰에 기초해서 궁극적 실재와 우주 그리고 인간의 통합적 관계를 설명하는 사상으로 구성된 종교 전통"이라고 정의된다.
이 신비주의는 그 구성 요소로 '체험', 체험을 위한 '수행', 체험과 수행을 통해서 얻어진 '통찰'을 가지고, 우주론, 인간론, 실재론에 대해서 지성적으로 이해하고 공유하려고 시도한다. 그 중에서도 성해영 교수는 신비 체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성해영 교수는 신비 체험이란 "신과 혹은 궁극적 실재와 자신의 참된 본성과 인간이 체험을 통해서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체험이 없어서는 신비주의적 종교적 경향성 자체가 성립 불가하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신비)체험은 인간의 일종의 변형된 의식 상태 중의 하나에서 그 궁극적 실재와 존재의 참된 본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라고 하는 체험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그러면서 성해영 교수는 '관상 기도'의 '관상'이 어원학적으로 희랍철학의 테오리아와 맞닿아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단어가 처음 언급된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파이드로스』의 일부를 발췌했다. 성해영 교수는 '관조'라는 표현을 들어 "관조라는 게 바라보다라는 뜻인데 어쨌든 이게 테오리아, 테오레인이라고 하는 동사 혹은 명사가 이후에 '신적 관상'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번역돼서 나중에 기독교 전통에 '관상 기도'라고 번역되는 용어"라고 설명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자신의 영혼이 신적 세계에서 보았던 참된 실재에 대한 비전, 그 모습들을 기억을 해내게 되면 더 이상 인간의 영혼이 지상의 세계에 내려오지 않고. 소위 윤회를 멈춘다.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영혼을 철학자의 영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관상 기도'의 어원학적 의미를 살펴본 성해영 교수는 또 '관상 기도'의 '관상'이 심사숙고하여 반추하는 사고 행위를 담고 있는 '명상'과 구분되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어 '관상 기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성해영 교수에 따르면, '관상 기도'는 청원기도, 감사기도, 중보기도, 찬양기도와는 달리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신과 혹은 초월적인 실재와 관계에 전면적으로 의지라든지 마음을 집중하는 행위나 마음의 상태"를 의미했다. 성해영 교수는 "관상 기도라고 하는 것은 신적 관상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적 활동, 사고 활동을 침묵 속으로 집어넣는 것을 관상 기도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성해영 교수 강연에 토론자로 참여한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은 "현실은 역사이고 초월은 신비"라는 전제를 깔아놓고 역사와 신비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정경일 원장은 "신비주의는 역사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며 "물질 세계로부터 탈출하는 것, 플라톤적으로 말하면 현상 세계를 넘어서 이데아의 세계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상승해 가는 것, 플로티노스적으로 말하면 유출해 나온 일자, 곧 신에게로 복귀하는 것, 돌아가는 것, 『무지의 구름』이 말하는 하나님을 향해 무지의 구름을 뚫고 상승해가는 것, 그런 신비 체험의 목적은 모두 역사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경일 원장은 "이 몸 없이, 이 역사 속에서의 실존의 경험 없이, 상태 없이 과연 우리는 신비를 경험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인간 경험 없이 신비 체험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저는 저곳의 신비 체험에 열중하는 만큼 이곳의 인간 체험, 이곳의 역사 체험에 대해서도 우리는 책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경일 원장은 "사람들은 왜 신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체험을 하고 싶어하는 것인가"라고 자문한 뒤 "그것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가 완전한 세계가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지상적 실존의 상태가 (불안하기 때문에)신비에 대한 감각과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경일 원장은 초월은 공간적 장소로 표상되기도 초월적 상태로 표상되기도 하는데 자신은 후자를 수긍한다면서 "신비 체험은 장소적, 공간적 상태라기 보다는 어떤 상태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 어디서나 의식의 변화를 통해서 그 어디나 초월의 장소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바로 이곳도 신비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