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과 예술(4) 때론 천사도 아프다

김문선 목사 (생명의 망 잇기 사무국장)

유고 짐베르크의 '상처 입은 천사'

짐베르크
(Photo : ⓒ 국립 핀란드 헬싱키 미술관)
▲그림설명: Hugo Simberg / The wounded angel 1903. 국립 핀란드 헬싱키 미술관 소장

무한 경쟁이란 단어가 살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루, 하루 불안과 위기에 쫓기며 노동의 노예로 살아간다.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 열정의 끝가지에 공허와 허무가 사무친다. 헛헛한 영혼의 빈자리엔 쾌락과 소비, 짤막한 욕망의 쾌감이 자리한다. 자신에게 묻는다. '삶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살기 위해 살아가지만 살아있지 않은 자신을 숨긴 채 오늘도 살아간다.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며 살기 위해 약해지지 말라고 배웠다.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를 잃어버린 종교에게 성공과 성취, 번영이 신의 축복이라 들어왔다. 삶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 모든 것이 허상이며 삶의 본질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나를 구속하는 생존의 현실과 돈이 있어야만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을 얻을 수 있는 자본의 구조에 매여 있다.

이상과 현실, 앎과 삶의 불일치가 주는 내적 갈등이 쌓일수록 존재의 호흡은 거칠어진다. 자기 소외 속에 점점 '나'를 잃어간다. 나를 잃은 채 살아가는 '나.' 그 자체가 이미 상처다. 아프면 안 된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 스스로에게 다그치지만 갈수록 지쳐만 간다.

'상처 입은 천사,' 핀란드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화가 유고 짐베르크의 그림이다. 핀란드의 민담 '아마란스'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의도된 메시지보다 해석자의 상상과 감정이입으로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 내려했던 작가의 의도가 통했나보다. 눈과 마음이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거닐며 다양한 감정과 이성의 활동을 촉발시킨다.

유독, 상처 입은 천사의 모습이 눈에 담긴다. 중앙에 위치한 탓일까? 새하얀 존재의 빛깔 때문일까? 피를 흘리며 찢긴 천사의 날개, 상처 입은 두 눈을 동여맨 붕대, 그럼에도 천사는 자신의 정체성과 생명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듯 시든 꽃을 꼭 붙들고 있다. 천사를 짊어지고 가는 두 아이의 표정은 어둡다. 앞에 선 아이는 장례식을 가는 듯 무표정한 얼굴에 검은 정장을 입고 있다. 후미에 자리한 아이의 표정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말하지 않지만 눈빛으로 무엇을 따지는 듯하다. 아이의 눈빛이 마음에 물음을 던진다. '아이는 무엇 때문에 저리도 분노하고 있을까?'

아이에게 다시 말을 걸어본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니?' 마음에 한 줄기 소리가 들린다. '천사는 아프면 안 되나요?' 천사는 아프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아이의 외침이 들린다. 그렇게 소리 없이 죽어가는 영혼들. 아플 수도 없고, 아파서도 안 된다며 상처와 아픔, 고통을 억누르는 이들의 슬픔을 아이가 대변하고 있다.

아픔에 솔직할 순 없을까? 자기 생명에 집착하지 않으며 건강하게 자신을 돌보는 길은 무엇일까? 살아있기에 아프다. 사랑했기에 상처 받는다. 아니라고 말하지 말자. 미성숙한 자기애라 말하지 말자. 행복하지 않은 이가 누굴 행복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서로의 아픔에 솔직하고 서로의 아픔을 단죄하지 않으며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포용할 순 없을까?

이인기 ihnklee@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