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무현전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이 타락한 경제인들로부터의 금품수수에 관한 검찰의 수사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왔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노전대통령의 측근들이나 야당들은 이명박 정부가 정치보복차원에서 표적수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었고, 그의 정치적 적대자들은 노전대통령의 도덕적 허위성을 확인함으로써 자신들의 과거의 부도덕성을 상쇄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졌었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부인이 적잖은 액수의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노전대통령이 고백하자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물론 온 국민이 좌절과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이전의 정권들과는 달리 정권의 도덕성을 유난히 강조해온 노무현전대통령인지라 국민들의 좌절감과 배신감은 더욱더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의 역대대통령들이 거의 예외 없이 독재자나 부패자로 낙인찍혔었다. 그들 중의 다수가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또 직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독재자로서 그리고 부패혐의자로서 사법처리를 당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노무현과 그 주변 인물들의 부정과 부패를 뭔가 권력자들 주변에서 생길 수 있는 필연적인 귀결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사람도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상화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착시현상을 가지고 평가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진보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진보적이지도 않았고, 도덕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도덕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새로운 타입의 정치를 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그는 정치에 있어서 아마추어였다. 그는 전통적 민주당을 분열시켜 거의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약화시키고, 당정분리를 내세워 민주주의에서의 정당의 책임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그는 한국정치에서 돈키호테, 그것도 타락한 돈키호테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평가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하는 운전자로 비유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제는 6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의 정치체제인 대통령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따라서 전 국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통령제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철저한 검토가 있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왜냐하면 현재의 이명박정부의 제반행태들, 특히 삼권분립 정신에 기초하지 않고 국회를 무시한 국정운영, 사법부의 시녀화, 언론 등 반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행사와 함께 대기업과 부자들 편향적 경제정책들은 대통령 한 사람의 절대 권력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정치체제가 되었든지 그 권력이 특정인에게 집중되는 절대 권력체제가 아니라 그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협의권력체제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지금은 경제 살리기만 할 때가 아니라 국민의 주권 살리기를 할 때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듯이 또 하나의 불행한 독재자 대통령이나 타락한 대통령을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와 도덕 혹은 정치와 종교의 관계문제는 매우 오래된 주제이다. 구약성서에서 전제군주제의 출현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된 것은 그 체제가 내재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 즉 절대 권력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절대 권력은 필연적으로 독재적이며 동시에 타락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인들 특히 율법이나 예언자들은 절대자는 오직 신밖에 없으며, 따라서 인간이나 인간의 권력이 절대화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스라엘이나 유대 나라들이 망한 것은 아시리아나 바빌론과 같은 외국의 세력들의 침공에 의해서 된 것이다. 그러나 성서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나 유대의 왕들의 독재와 타락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외적 요인이 아니라 내적 요인들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와 도덕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정치가 도덕적이지 못할 때는 실패하고 정치가가 도덕적이지 못할 때는 실패한 정치가가 된다.
그런데 마키아벨리 이후 오늘날에도 정치와 도덕은 무관하며, 정치는 오직 권력사용의 기술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처럼 유능한 정치가는 뛰어난 정치적 기술, 선으로 위장된 권모와 술수로 백성들을 통치해야 하며, 거기에는 도덕이나 양심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배제된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독일의 비스마르크도 예수의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정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적대자에게 자비를 베풀거나, 적대자가 원하는 것을 허락해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적대자가 겉옷을 달라고 하는데 속옷까지 벗어주는 것은 정치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정치에서는 도덕성은 전혀 불필요한 것일까? 특히 산상설교의 가르침은 현실정치에서는 전혀 무용지물일까? 정치에서나 경제에서나 도덕성이 그 기초가 되는 것은 인간이나 정치가에 대한 신뢰는 그 도덕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 스미스도 국부론이라는 경제학 원리와 함께 도덕 감성론이라는 책을 통해서 인간의 삶과 제반 관계에서 도덕성이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도덕성에 기초한 정치와 경제만이 정치와 경제의 주체들인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정치만이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도덕성을 상실한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비참한 말로를 우리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손규태 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