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근심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분은 불안정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세상에 오셨다. 한 여름 가뭄이 들면 겨울 양식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농업 사회 안에서 사셨다. 어부들과 교제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밤이 새도록 애를 써도 팔거나 집에 가져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심정을 알고 계셨고 이러한 삶의 근심거리들이 만들어내는 유혹들도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분은 마태복음 6장에서 근심에 관한 매우 탁월한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6:25)
첫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요청조차 하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생명과 육신을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의 생명과 육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식탁에 올려놓는 음식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의 육신은 우리가 입는 옷보다 더 중요하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대단히 중요한 생명을 주셨다면, 그분이 훨씬 덜 중요한 음식을 주지 않으시겠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이롭고도 멋지게 만들어진 육신을 주셨다면 그분이 그 육신을 보호할 의복을 주지 않으시겠는가? 게다가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면, 그분이 우리의 일시적인 생명을 유지시켜주지 않으시겠는가?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6:26)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말 못하는 짐승들도 신실하게 먹이신다는 사실을 일러주신다.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수확하거나 식량을 창고에 보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 충분한 식량을 가졌는지, 혹은 겨울을 견뎌낼 수 있을는지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백미이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이 새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일러주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새들을 먹이신다면, 그분은 그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존재들을 분명히 먹이실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의 피로 산 존재들을 특별히 보호하지 않으시겠는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6:27)
근심은 절대적으로 좋지 않다. 염려한다고 돈이나 음식이나 옷이 생기지 않는다. 근심은 그저 부정적인 결과만을 초래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지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도록 부추긴다. 근심은 불신이다. 믿음의 반대이다. 그리고 더 많은 두려움과 불안을 유도한다. 우리가 아무리 최대한 생각한다고 해도 단 한 가지의 일도 제지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염려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는 일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든 발생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너희를 돌보시는 하늘 아버지를 믿어라.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logs/mark-altrogge/3-things-jesus-tells-us-about-worr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