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본지에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고 시급한 개혁 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개혁 교회 전통이 교회 개혁의 일상성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변질되고 있는 신앙의 일상에 맞서 목회 현장에서 줄곧 개혁의 목소리를 높여온 일선 목회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소재 광염교회(기장) 담임목사 이취임식 예배에서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십수년 간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원로목사로 추대된 이건화 목사는 후임 김창주 목사에게 새로 지은 교회의 문을 여는 '교회 열쇠'를 깨끗이 건네 주었다. 수년 간 재개발 조합원들과 협상 끝에 대토와 건축비를 받아 빚 한푼 없이 지은 새 성전의 열쇠를 후임목사와 교회 공동체에 전적으로 위임한다는 의미가 담긴 퍼포먼스였다.
기자는 은퇴식에 앞서 이건화 목사를 만났다. 예정된 특별한 퍼포먼스에 대해 묻자 이건화 목사는 대뜸 한국교회의 원로목사제에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 목사는 "원로목사가 교회 공동체 차원의 유익은 살피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한다"고 꼬집었다.
이 목사에 따르면, 지방의 A교회 원로목사는 후임목사가 들어오기 전 당회원들과 먼저 원로목사 예우 문제를 처리했다. 교회 형편은 뒤로 한채 예우 차원에서 매달 생활비를 내줄 것을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후임목사는 교회 형편이 더 나빠지자 당회원들과 교인들의 의견을 물어 앞서 당회에서 결정한 내용을 철회하고 원로목사 생활비 지급을 중단했다. 이때부터 노회 차원에서 법적 공방이 벌어지는 등 싸움이 끊이질 않고 있단다.
이건화 목사는 원로목사의 자세에 대해 "교회에서 깨끗이 떠나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목사 자신도 그렇게 떠난다고 했다. 이 목사는 재개발 조합원들과의 밀고 당기는 협상 과정에서 교회 측 대표로 나서 빚 한푼 없이 새 성전을 건축했다. 규모가 크지는 않더라도 지역교회 차원에서는 교회 공동체 식구들이 예배를 드리기에는 아담한 공간이다. 새 교회 건축의 중추적 역할을 한 그는 원로목사로서 퇴직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요구할 수 있었지만 그러질 않았다. 그저 빈손으로 떠났다.
이 목사는 "원로목사는 교회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면서 "자기가 힘써 일했다고 해서 자기 것이 아니다. 청지기 정신을 잃어버리면 모두 부패하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성전이면 하나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런 이건화 목사에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M교회 변칙세습 문제를 지적하자 펄쩍 뛰었다. 이 목사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법과 원칙대로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들 목사가 다행히 거부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사회의 보는 눈도 있는데 그게 그렇게 세습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원로목사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이란다. 빈손으로 나서는 이 목사에게 향후 계획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은퇴하기 몇 주 전 천호동교회(기장)에서 설교 목사 제의가 들어왔다는 것. 설교 목사이지만 집무실도 보장해 주기로 했단다. 이 목사는 "비우니까 채워진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 요즘 부쩍 삶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가 섬기게 될 천호동교회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교회로 최근까지 재개발 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재개발 교회 문제에 있어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이건화 목사의 소식을 듣고 그를 설교 목사로 초빙해 말씀 사역과 함께 교회 재개발 문제를 맡긴 것이다. 이 목사는 "재개발 문제로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행히 재개발 협상에서 교회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노하우와 전략이 있었다. 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교회에 도움을 주어왔다. 달란트는 나누고 봉사하라고 주시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이건화 목사는 십수년 동안 교단의 개혁을 부르짖는 교단개혁모임의 리더 역할을 맡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편법과 불법으로 부당 이득을 챙긴 총회 지도자들을 고소, 고발하며 교단 개혁을 부르짖던 그는 한 때 교단 그리고 노회로부터 일방적인 징계를 받으며 목회 활동 중단 위기를 겪기도 했었다. 하지만 '개혁'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활동한 끝에 올해 마침내 노력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 목사는 "올해부터 우리 총회가 외부 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지재단, 연금재단, 복지재단 등 주요 재단 감사를 비롯해 아카데미 하우스 장기임대 계약 문제 등 교단의 크고 작은 사업에 대해 철저하게 외부 감사를 실시해 부정 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각오다. 이 목사는 이 같은 외부 감사 실시를 결정한 총회 임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개신교회는 개혁 교회 전통 위에 서있다. 교회 개혁은 일상적이어야 한다"면서 교회의 3대 개혁 과제로 △재정투명성 △인사투명성 △교회 법 준수 등을 들었다. 일견 상식적으로 보이는 이들 과제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교단을 비롯해 개교회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정 부패 비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목사는 "교회가 기본에만 충실했더라면 지금처럼 대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기본과 원칙에서 멀어져 부정 부패가 끊이질 않았고 이것이 근거가 되어서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이제라도 기본과 원칙, 즉 재정투명성, 인사투명성, 법 준수 등을 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