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서평] "19세기 영국 기독교 민중 여성작가들" (3)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철학적 신학, 민중신학)

오정화, 『19세기 영국 여성작가와 기독교』(이화여대출판문화원, 2017)

존경하는 오정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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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본지 논설주간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선생님의 엘리엇에 관한 장을 읽으면서, 엘리엇은 이미 포스트모던(Post-modern) 시대를 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탈근대주의, 근대를 해체하기 시작한 것은 니체가 "신은 죽었다. 우리가 죽였다. 우리 인간들이 신의 살해자다"라고 선포한데서 부터라고 했지만, 엘리엇 역시 그의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감성, 공감이라고 하는 인간 감정을 도덕과 지식의 근원으로 주장한데서부터 19세기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의 "머리" 중심에서 "가슴" 중심으로 인식론적,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작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9세기 엘리엇이 철학으로 문학을 하던 시대는 찰스 다윈(1809-1882)의 시대이고 그가 파격적인 『종의 기원』을 발표한 1859년은 엘리엇이 베스트셀러 작가였을 때입니다. 그리고 세기적인 공리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과 엘리엇은 동시대 작가였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지식 세계는 거의 모두 뉴튼(Isaac Newton, 1642-1726)의 물리학과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국부론』의 지배 아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여성작가 엘리엇의 "감성과 공감의 철학과 윤리학"은 가히 "반(反)지성," 혹은 "반(反)문화"로까지 들릴 정도입니다.

여기서 저는 선생님이 앞에서 (제2장) 샬롯 브론테의 작품을 논평하면서 실존철학자/신학자 키르케고르의 철학을 원용하신 것처럼, 엘리엇의 작품에서 감성과 공감을 신학과 윤리학의 중심에 놓으면서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의 신학사상을 왜 언급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슐라이어마허가 1799년에 발표한 『종교론』(On Religion)에서 그는 종교를 "절대적 의지의 감정(the 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상기하게 됩니다. 종교는 이성적, 형이상학적 문제가 아니라, 더욱이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감성의 문제라고 갈파한 것은 당시 영국에서 논의되고 있던 "이신론"(理神論) 혹은 deism의 합리주의적 신론에 대한 대안이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용감하게도 종교/기독교는 형이상학도 아니고 윤리도 아니고 근본적으로 직관(intuition)이고 감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종교는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 이야기보다, '우주,' '영원'을 말하며 영원과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고 갈파하면서 하나님 없는 종교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끝내 지속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 속에 자신을 비우고 포기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가히 반종교적이라고 할 만큼 혁명적인 자유주의 신학이었습니다. 옛날,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고 사약을 받아 죽기 전에 제자들과 한 대화 속에서(『파이돈』) "인간은 죽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놀라운 말을 하면서 '죽는다는 것'이 영혼이 육체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니 인간의 육체로부터 독립하는 영적 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자유이고 해방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순전히 제 생각이고 상상이지만, 엘리엇은 틀림없이 그의 많은 독서 가운데 당시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에 접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19세기 감리교 교인들과 목회자들은 신앙의 열정을 강조하면서 신앙의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면, "구원 받았다는 확신," 믿음과 감정을 강조했던 것을 생각하면, 엘리엇의 "공감의 철학과 문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놀라고 감탄한 것은 엘리엇의 유명한 소설, 『애덤 비드』(Adam Bede)의 주인공이 다이나 모리스라는 여자 목사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부장적이며 거의 여성혐오적인 기독교 문화의 한가운데서 여성 목사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그 여성 목회자를 통해서 이웃 사랑과 가난하고 눌리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목회를 부각시킨데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가 천주교나 성공회나 감리교 등 개신교에서 여성 목회자를 교회에서 초빙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지적하신 대로 영국 여성유권자들이 참정권을 쟁취한 것이 1918년이었다면, 엘리엇의 작품은 실로 시대를 앞서가는 예언자적, 아니, 실로 "종말론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에 다른 개신교 교단보다 훨씬 앞서서 여성 목사 안수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의 한국 교회의 큰 이슈가 여성 장로 장립과 목사 안수 문제였던 것을 상기하면, 엘리엇의 종교적, 교회적 상상력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엇이 포이어바흐에게서 배운 것은 기독교를 "하나님의 사랑의 종교," 즉, 인간들 사이, 특히 여성의 사랑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좀 긴 인용이지만,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대목입니다.

포이어바흐는 성육신과 십자가를 통한 예수의 사랑을 가장 고귀한 사랑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예수의 사랑을 '여성의 감성'이라고 보았고, 삼위일체 중 예수를 통해 여성적 원리가 드러났다고 보았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은 '여성의 권리를 신성한 것으로 믿는 믿음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Feuerbach, 1957:71-72). 포이어바흐의 신학에 있어서 가장 핵심에 사랑이 있으며, 더구나 사랑을 여성적 원리로 해석한 것은 엘리엇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218쪽)

끝으로 엘리엇이 다이나 모리스 목사를 통해서 말하는 성직으로서의 목회자 상, 혹은, 역할은 모름지기 오늘의 우리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귀 기울이고 본받아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 남자의 청혼을 거절하고 "자신은 결혼보다 '목사의 직무' (ministry)로 부름 받았다고, 즉, 목사의 직무가 자신의 소명(vocation, 혹은 calling)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고 하시면서 모리스 목사의 말을 인용하셨습니다(239쪽). 저는 모리스 목사의 입을 빌려 엘리엇이 밝힌 목회자의 소명이 교훈이 되어서 다시 인용하고 싶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다른 사람들을 '돌보라'(minister)라고 '부르셨어요.' 나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가지지 말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라고요. 그의 말씀을 전하려고 나를 '부르셨고,' 위대하게 나의 일을 지배하고 계세요.... 거기[스노우필드]에 있는 어린 양떼를 도와주고 위로하고 힘을 돋아주는 일이 내게 주어 있어요... (79; 필자[오정화] 강조) (239쪽)

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19세기 영국 여성작가와 기독교』를 읽으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했는지 저의 "독서 경험"을 저자와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 편지 아닌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만 이렇게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여기까지 읽어 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부터 몇 가지 저의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저는 이 책 전반에 걸쳐서 네 사람의 여성 작가를 소개하고 그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평론하시고 뒤편에 가서 각 작가들의 삶과 사상들을 소상히 소개한 것이 작품과 함께 작가들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대정신과 사회상과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평론은 "문화사회학," 혹은 "문학사회학," 나아가서 "지식사회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둘째, 저는 1970년대 우리 한국 사회의 고속경제성장 드라이브 속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들, 특히 소녀 노동자들의 아픔과 고생을 목격한 기독교 신학자들이 그들 편에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설움과 분노에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성경을 다시 읽고 말하게 된 "민중신학"의 눈으로, 선생님이 소개하신 영국 19세기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서 신음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제가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여러 교수님들과 함께 "여성학 개론" 교양과목을 개설하고 한국여성연구소를 창설하는데 힘을 모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폭정 아래서 한국 기독교 여성들은 박순경 교수님을 앞세워 한국 여성신학 협의회를 창설하고 여성해방 신학담론을 활발하게 불러일으켰던 것을 기억합니다. 선생님의 책은 가히 19세기 영국의 여성 민중을 위한, 여성 민중에 의한, 여성 민중의 기독교 신학 책이라고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책 제목을 내가 이해한 대로 "19세기 영국 기독교 민중 여성작가들"이라고 붙이고 싶었습니다.

셋째로,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복음주의"라는 말이 일관성 있게 사용되었는데,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개신교"라는 말과 "복음주의"라는 말이 같은 의미와 개념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복음주의라는 말을 개신교라는 개념으로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컨텍스에서는 "복음주의"를 내세우는 이른바 "복음주의"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대부분 "성경 근본주의자"들이고 요새 상황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고 서울 광장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와서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 "꼴통 보수 예수쟁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예수쟁이"들이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아마도 "종북 빨갱이 작가들을 '복음주의자들'이라고 하다니..."하고 항의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복음주의"를 무슨 말로 대치할까 생각해 보았는데, 역시 "개신교"라는 말이 완전히 적절하게는 안 들리지만 그래도 "복음주의"라는 말보다는 덜 오해받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최선의 대안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넷째로, 저는 여성신학하는 제자들과 민중신학회에 선생님의 책을 소개하고 선생님을 강사로 모시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습니다. 초청을 받으시게 되면 반드시 응해 주시고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엘리엇의 소설부터 읽기 시작하겠습니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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