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니 우리는 그동안 '입헌공주제'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권한은 막강하나 능력은 없었던 군주... 그 분은 현대를 사는 왕족이었습니다. 그 분이 가장 많이 사용한 두 단어는 '하극상'과 '색출'이었다고 합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귀하게 자란 이 분은 보편적인 서민의 삶, 민중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연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12일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제27회 영성포럼이 '정의로운 사회와 지도자'란 주제로 개최된 가운데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지도자의 사람됨'이란 주제 발제의 논평을 맡은 장윤재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물 됨됨이를 이 같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그를 보좌한 공직자들을 향해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일갈했다. 장윤재 박사는 "맹자에 의하면 정의란 자기 행동에 대한 '수치심'과 사회에 대한 '증오심'으로 구성된다.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라며 "수치심은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는 양심,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있을 때 사람이요, 그것이 없으면 사람이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라는 말의 뜻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장윤재 박사는 수치심이 "개인적 덕성"이라면 증오심은 "공적인 덕목"이라고 했으며 광화문 촛불시민은 후자 즉, 부끄러움이 공동체에 적용될 때 나타나는 '공적 수치심'의 감정이 밑바탕에 깔린 증오심의 표출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맹자는 증오심의 바탕에는 수치심이 깔려야 하고, 수치심은 증오심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럴 때 안팎으로 정의가 선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앞서 서광선 박사는 '지도자의 사람됨'이란 주제 발제에서 서양의 이성주의적, 합리주의적, 주지주의적 인간관을 비판하면서 키에르케고르의 인간 실존의 3가지 단계(혹은 차원)에 주목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키에르케고르는 인간 실존을 심미적 단계 혹은 미학적 단계/ 도덕적 단계/ 영적 혹은 종교적 단계로 나누었다. 각 단계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차원"에 가깝다는게 서광선 박사의 설명이다. 또 각각의 차원은 "삶의 방법"을 이야기 한다고 했다. 서 박사는 결론적으로 키에르케고르의 인간 실존 세 차원을 통합해 "심미적으로 멋있고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영적 차원에서 사는 사람"을 참된 인간이라고 정의했다.
먼저 심미적 단계에 대해 키에르케고르는 제1차원적 인간으로 "가장 낮은 단계의 인간으로 생각했다"고 서 박사는 전했다. 심미적 단계에서 인간은 그저 "욕구에 따라 사는 차원, 즉 관능성의 추구, 식욕과 성욕을 만족시키는 것을 인간의 목적으로 삼는 생의 차원"에 머무른다. 서 박사는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심미적 차원의 삶은 "원초적인 동물적 욕구충족이며 윤리적 혹은 도덕적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이며 생의 차원"이며 "육체적 고통을 피하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욕심을 충족시키는 차원의 인생"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 박사는 키에르케고르가 주장하는 인간실존의 심미적 단계 혹은 1차원적 인간에 대해 "너무 비하하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렇게 된 것은 서구 전통에 있어서 인간의 몸을 비하해 온 유대 기독교 전통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몸이라고 하는 생명체로 물질세계에 속해 있으며, 물질로 존재한다는 것을 망각한 것 같다"면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영혼이 살아 숨 쉰다는 격언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 박사는 특히 인간의 감정의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동정, 동감과 공감, 웃음과 눈물, 노래와 춤, 추한 것과 아름다움에 대한 심미적 느낌, 이런 감정의 표시와 몸부림은 인간 실존의 중요한 차원이고 생활 양식"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심미적 차원"으로 구분한 것은 일리가 있겠으나, 이 차원을 비하하고 열등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제2차원적인 인간을 말하는 도덕적 단계에 대해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선택하고 결정하는 단계"라고 설명한다. 무엇이 선한지 그리고 무엇이 옳은지의 문제로 귀결되는 인간형을 뜻한다. 서 박사는 이러한 도덕적 차원에 대해 "도덕과 윤리를 말하는데 있어서 한 개인, 나 혼자 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 타자(他者)와의 관계성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라며 개인의 윤리는 정치사회 윤리와 필연적으로 맞닿을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키에르케고르는 인간 실존의 제3의 차원에 해당하는 종교적 단계를 설명할 때 구약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고 칼을 들었던 순간을 예로 든 바 있다. 서 박사는 "종교적 차원은 도덕적 차원을 뛰어넘는 결단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 박사는 "참된 지도자는 이러한 종교적이며 영적 차원의 사람이라는 것"이라며 "안 되는 일, 부정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해도, 불효자식이 되고, 친구를 배반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 나는 하늘의 뜻, 하나님의 뜻, 정의를 실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길을 택하겠다고 하는 용기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래서 고독한 길이 바로 종교적 길이고 영적 삶의 길인 것이다"라고 전했다. 덧붙여, "성령의 사람은 심미적으로 멋있고 도덕적으로도 완벽하고 영적 차원에서 사는 사람이라 하겠다"면서 그런 사람 모델을 '섬기는 권력'의 원형인 "인간 예수에서 찾았다"고 주장했다.
장윤재 박사는 박근혜 정권 수뇌부들에 대해 이러한 예수의 '섬기는 권력'과 배치되는 "소인배"라며 "가난한 사람들의 등을 쳐서 이권 사업을 하던 예루살렘 성전경제(Temple Economy)에 분노하여 상을 엎어버린 예수의 거룩한 분노는 바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그의 깊은 열정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겠는가"라고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