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스되짚어보기] 우리시대의 부끄러움, 한 번으로 족하다

정치권력 교체에 따라 뒤바뀐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 오점으로 기억해야

Emmanuel

(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지난 해 9월 숨진 고 백남기 농민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해메다 지난 해 9월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됐다. 서울대병원은 15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사실 고인의 사인은 너무나 명백했다. 그러나 고인의 주치의였던 이 병원 백선하 당시 신경외과장은 고인의 사인을 병사로 기재했고, 이로 인해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이어 논란의 불똥은 유족들에게 미쳤고, 김진태 현 자유한국당 의원, 김세의 MBC기자,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 등 극우인사들은 유족들을 향해 막말을 일삼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경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고인에 대해 부검영장 집행을 시도했다. 이 소식을 듣고 가톨릭 사제와 가톨릭 농민회 소속 농민들, 시민들이 현장으로 달려와 경찰과 첨예하게 대치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백선하 신경외과장의 사망진단서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기자는 2016년 10월10일 자 ‘뉴스되짚어보기'를 통해 고인의 사망원인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 적이 있었다. 그때 기자는 이렇게 적었다.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신경외과장을 맡고 있는 의료인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어려운 주장을 고집한다. 더구나 그는 유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니, 의료인으로서의 자질마저 의심스럽다. 그뿐만 아니다. 사망원인을 병사라고 진단한 서울대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엔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2억 2000여 만원의 보험금을 청구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도대체 진실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의아하다."

정치논리로 더럽혀진 병동, 정화하려면

공교롭게도 새정부 출범 이후 한 달이 갓 지난 시점에서 고인의 사인은 뒤바뀌었다. 서울대병원측은 정치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고인의 병세를 수시로 보고했다는 정황이 올해 1월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경향신문> 보도 중 일부다.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서창석 서울대병원장(56)이 지난해 9월25일 백남기씨 사망 전후 청와대에 수시로 상황보고를 한 것으로 1일 전해졌다. 서 원장은 백씨의 병세, 백씨 가족들의 반응 등을 청와대에 알리고 대응책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에 대한 서울대병원의 무리한 ‘병사' 판정도 청와대와의 교감하에 이뤄졌다는 외압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질문을 한 번 던져보자. 지난 해 10월 < JTBC 뉴스룸 >의 최순실 테블릿PC 보도 이후 1,700만의 시민들이 한겨울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다. 이에 힘입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지난 5월 새정부가 출범했다. 이 같은 정치적 격변이 없었다면 서울대병원이 고인의 사인을 수정했을까? 지금 백선하 신경외과장의 태도를 살펴보라. 그는 여전히 자신의 소견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자 여러분께 게으르다는 인상을 준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지난 해 10월10일자 ‘뉴스되짚어보기'를 들춰야겠다. 기자는 또 이렇게 적었다.

"한 인간이 숨을 거뒀다. 의료진은 그가 어떤 경위로 생을 마감했는지, 자신의 전문지식을 동원해 명확히 규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사회 공동체는 한 인간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고, 슬픔 당한 유가족의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 무슨 거창한 대의명분 때문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치료행위가 행해지는 병동은 가장 인도주의적이어야 한다. 한 인간의 생명은 정치, 종교, 인종을 초월해 그 자체로 숭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는 병원이, 그것도 국내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대학교 병원이 정치권력의 교체에 맞춰 고인의 사망원인에 '수정을 가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불행한 일이다.

서울대병원의 사인 수정 발표 다음 날인 16일 이철성 경찰청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 시위과정에서 유명 달리한 고 백남기 농민님과 유가족 분들에 애도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면피성 사과로 매듭지어질 문제가 아니다.

먼저 박근혜 전 정권 당시의 청와대가 서울대병원에 외압을 행사한 것은 아닌지, 혹시 서창석 서울대병원장과 주치의였던 백선하 신경외과장이 정권 눈치를 살피며 정권 입맛에 맞게 처신한 건 아니었는지 철저하게 가려내야 한다. 또한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 구은수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 고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경찰 수뇌부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병동은 가장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있어야 할 공간이다. 이토록 신성한 공간이 정치논리로 더럽혀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런 부끄러움은 한 번으로 족하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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