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원정도박, 교비 유용, 그리고 친인척에 대한 특혜
5일 KBS 2TV 시사고발프로그램 <추적60분 - 총장님의 이중생활 36년>이 폭로한 평택대학교 조기흥 명예총장의 비리다. 방송에서는 경기도 소재 A대학의 조 아무개 식으로 익명처리됐지만, 보도 내용이 조 명예총장에 얽힌 것임은 너무나도 확실하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먼저 성추행. 조 명예총장은 여성 교수 및 교직원들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학교 교직원 중 한 명은 22년 동안 조 명예총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성추행 피해자가 10명에 이른다. 사실 조 명예총장의 성추행 의혹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올해 초 복수의 언론을 통해 그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다음은 원정도박. 조 명예총장은 미국 출장이 잦았다. 대학 총장을 지내면서 외국 출장은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 문제는 출장이 도박을 위한 ‘건수'라는 점이다. 방송에 출연한 한 학교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조 명예총장의 도박 탐닉은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쯤되면 상황은 심각하다. 그런데 교비 유용과 족벌 운영에 이르면 할 말을 잃는다. 보도 전반에 비추어 보건데 조 명예총장은 학교를 자신의 사유물 쯤으로 여기나 보다. 그는 36년 동안 총장을 지낸 뒤 명예총장으로 물러 앉았다. 그는 퇴임 직전 총장에 준하는 예우를 받도록 규정을 고쳤다. 그래서 시가 5억 상당의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를 학교측으로부터 제공 받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비로 상품권도 사들이고 미국 원정도박도 하고 심지어 식자재를 사는데도 썼다.
한편 조 명예총장은 자신의 친인척을 학교 곳곳에 '심어' 놓았다. 자신의 큰 딸 부부에겐 대학 기숙사 매점 사업권을 주고, 둘째 딸은 총무처장, 넷재 딸과 막내 아들은 교수로 임용했다. 추적60분 취재진의 취재 결과 넷째 딸의 교수 임용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다. 조 명예총장은 자신의 아들에게 학교를 물려주려고 했던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앞서 지적했지만 조 명예총장의 비리는 새삼스럽지 않다. 평택대는 지난 2012년 12월 교과부의 감사결과 전임교원 특별채용, 교비 부당집행 등이 적발된 적이 있었다. 올해 2월에도 경찰은 조 명예총장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5개월 가까이 지난 현시점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평택대학교 조기흥 명예총장 퇴진과 정상화를 촉구하는 평택지역대책위원회'가 지난 달 검찰의 미온적인 태도를 질타하며 조속한 기소와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 명예총장은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은 평택대의 사례가 특이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사학재단에 비리가 만연해 있다는 말이다. 법으로 비리를 규제하려해도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추적60분>은 사학재단 비리를 막으려면 사학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 정신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여기에 한 가지 문제를 더 제기하고자 한다. 평택대의 전신은 미국인 선교사 아서 피어선이 세운 성경학교다. 학교 당국은 이 같은 역사를 들먹이며 기독교 정신을 강조해 왔고, 조 명예총장 역시 자신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포장했다. 그러나 조 명예총장을 둘러싼 각종 비리의혹은 기독교 정신을 무색하게 한다.
이 지점에서 기독교 정신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조 명예총장은 처음엔 학교 전도사였다고 한다. 그는 학교 관련 법에 이해가 깊었고, 그래서 학교 운영을 맡아 지금의 종합대학으로 키워낸 주역이었다. 사회적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이력에서 번영신학의 냄새가 난다.
한국교회는 남다른 사업수완을 은혜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조 명예총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형교회 목사가 교회 크기를 키우는 데 성공했다면 조 명예총장은 학교를 키운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정신은 단지 교회의 크기나 헌금의 액수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공적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데서 드러난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교회가 아닌 세상속에서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택대는 등록금 의존율이 67.5%로 학생들의 등록금이 학교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결국 조 명예총장이 사용하는 돈은 학생들의 등록금이라는 말이다. 그런 돈을 식재료 사는데 쓰고, 도박에 탕진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일까? 자신의 딸을 교수자리에 앉히기 위해 규정까지 바꿔가며 특혜를 주는 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일까? 자신의 아들에게 학교를 대물림 하는게 성경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일까?
지금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의 사회적 신뢰는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중이다. 일선 목회자들에게서 탄식이 끊이지 않지만, 바닥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와중이다 보니 조 명예총장의 비리의혹에 사람들은 놀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오로지 성장과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칭송할 뿐 공적 영역에서 복음의 정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현하는 게 진정한 신앙이라는 걸 아예 모르기 때문이다.
개신교계는 사학 재단과 연관성이 깊다. 그래서 지난 2005년 정부가 학교법인 임원간 친인척 비율 축소와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사학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조 명예총장의 비리는 사학재단을 법의 지배하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입증했다. 평택대 사태를 계기로 법이 껍데기만 기독교인 사학재단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