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뉴스되짚어보기] 국민의당 제보조작, BBK와 판박이?

조작증거 근거로 판 뒤흔드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한 줄기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검찰은 9일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이미 구속된 이유미씨의 동생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의 수사 진행에 따라선 당지도부가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BK
(Photo : ⓒ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송화면 갈무리)
MBC TV 시사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은 10일 김경준 전 BBK 대표의 기획입국 의혹을 제기했다.

흥미롭게도 이날 밤 MBC TV 시사프로그램 <시사매거진2580>은 투자자문회사 BBK의 김경준 전 대표 인터뷰를 보도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방송을 통해 자신의 입국이 기획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묘하게도 국민의당 제보조작과 김경준 전 대표의 기획입국은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먼저 김 전 대표외 기획입국 의혹부터 따져보자. 김 전 대표의 입국은 2007년 대선판의 뇌관이나 다름없었다. 보수 한나라당은 정권교체를 노리고 있던 와중이라 당선이 유력했던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에게 제기된 BBK 관련 의혹은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했다. 이런 와중에 김 전 대표가 한국에 온다고 하니 한나라당으로서는 악재가 겹친 셈이었다.

이때 한나라당은 편지 한 장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한다. 이 편지는 국내에서 강도상해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붙잡힌 신경화씨가 LA구치소 수감돼 있다가 마침 함께 있던 김 전 대표에게 전해들은 말들을 옮겨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 편지엔 김 전 대표와 '큰집(청와대)' 사이에 모종의 이면합의에 따라 입국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나라당 대선 캠프는 해당 편지를 근거로 역공을 가했고, 이에 힘입어 이 전 대통령은 BBK 수렁에서 빠져 나왔다.

국민의당 제보 조작사건도 맥락이 비슷하다. 국민의당은 대선이 임박한 시점인 5월5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아들 문준용씨 채용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이 시점은 안철수 대선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안 후보는 4월 중순 오차범위 내에서 문 대통령에 이어 2위에 오르며 대선에서 양강구도를 형성하는 듯 했다. 그러나 선거 막바지로 가면서 문 대통령은 물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게도 밀리기 시작했다. 안 후보 캠프로서는 국면전환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문준용씨 채용특혜 의혹은 국민의당으로서는 국면전환 카드란 의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건 모두 증거가 조작됐음이 드러났다. 김경준 전 대표 기획입국 의혹은 한 통의 편지가 증거로 제시됐다. 그런데 해당 편지의 작성자인 재미 치과의사 신명씨는 2012년 경희대 직원이었던 양승덕씨의 부탁으로 편지를 쓰게 됐다고 폭로했다. 한편 제보조작 사건에서 국민의당이 쥐고 있던 '패'는 문준용씨와 함께 미국 파슨스스쿨에서 공부했다는 친구가 증언했다는 녹취록이었다. 국민의당은 이를 근거로 대선 막판까지 31차례에 걸쳐 관련 논평을 냈다. 그러나 이 증거들은 곧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다.

BBK 배후 없다던 검찰, 이번에는?

BBK
(Photo : ⓒ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송화면 갈무리)
MBC TV 시사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은 10일 김경준 전 BBK 대표의 기획입국 의혹을 제기했다. 김 전 대표는 이 방송에 출연해 억울하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검찰 판단이다. 김경준 기획입국 의혹에서 조작편지는 최초 기획자인 양씨에게 전달됐다. 이 편지는 양씨를 거쳐 김병진 당시 이명박 대선캠프 특보, 은진수 BBK대책팀장, 홍준표 당시 클린정치위원장에게 순차적으로 전달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는 양씨를 기획자로 지목하곤, 배후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사건의 발단이 된 기편지 조작에 대해 편지 자체는 가짜지만 내용은 진짜라는 사뭇 모순적인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 이후 부실수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정봉주 전 의원은 <시사매거진2580>과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사건을 왜곡시키고 사건을 한쪽 방향으로 틀어가는 데 일정 정도 기여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번 김경준씨의 기획입국 의혹 폭로로 검찰 처지는 더욱 궁색해졌다.

반면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에서 검찰은 이유미씨를 구속한데 이어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수사상황에 따라선 검찰의 칼끝이 당 수뇌부로 향할 여지가 충분하다. 검찰이 이 전 최고위원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국민의당이 즉각 긴급회의를 소집해 "검찰이 여당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수사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민의당은 자체조사 결과를 통해 이유미씨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같은 결론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대당 후보를, 그것도 당선이 유력한 후보를 향해 선거판을 뒤흔들만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일개' 당원 혼자 했겠냐는 합리적 의심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이유미씨의 단독범행'이라는 국민의당의 결론이 맞다고 해도 문제다. 국민의당 안에서 의혹의 타당성 여부를 제대로 검증할 시스템이 부실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이 창당하면서 내세운 새정치란 기치가 무색할 지경이다.

잘못이 불거졌을 때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잘못은 되풀이되는 법이다.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특정 정당이 관련 증거를 조작해 판을 뒤흔드려는 시도는 민의를 왜곡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사안이 이토록 위중함에도 지난 2012년 검찰은 BBK 편지 조작 가담자들을 풀어줬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검찰의 국민의당 제보조작 수사는 정도를 걷고 있다고 본다. 검찰이 이번엔 그 어떤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관련자들을 밝혀내고 가담 정도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만약 사건을 무마한다면 선거판을 더럽히는 범죄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검찰의 신뢰추락은 덤이겠다.

가뜩이나 제보조작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국민의당은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의 ‘입' 때문에 더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부대표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학교 급식노동자에 대해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다. 별 게 아니다.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냐"고 발언했고, 이 사실은 SBS 취재파일을 통해 알려졌다. 이 부대표의 발언은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며 국민의당을 더욱 궁지로 몰아갔다.

끝으로 국민의당에게 한 마디 충고를 던지고 싶다. 국민의당은 안철수가 표방한 새정치를 실현시키겠다며 출범한 정당이다. 이 같은 출생배경이 무색하게 국민의당이 제보조작 사건에서 보인 행태는 구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구태였다. 이런 식이면 당명에서 '국민'을 빼는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부디 드러난 증거 앞에 겸허해지기 바란다. 그게 정치의 정도니까 말이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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