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명한 신학자이자 <메시지> 등 베스트 셀러로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유진 피터슨이 입길에 올랐다. 미국의 종교전문 매체 'RNS(Religion News Service)' 12일자(현지시간)에 실린 인터뷰에서 피터슨은 "성소수자와 관련된 논의는 끝났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동성커플의 결혼주례도 맡을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피터슨의 발언은 즉각 큰 파장을 일으켰고, 피터슨은 <워싱턴포스트>에 자신의 입장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피터슨은 이 입장문에서 "나는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성경적 결혼관임을 분명히 한다. 난 모든 사안에서 성경적 견해를 지지한다"고 선을 그었다.
저명한 신학자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 파문을 일으키자 부랴부랴 논란을 수습한 건 분명 모양새가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따져볼 문제는 있다.
피터슨과 인터뷰를 진행한 메리트 기자는 후속보도를 통해 피터슨이 2014년부터 동성결혼에 대한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4년 피터슨이 웨스턴 세미나리(우리나라에서는 웨스턴 신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 글쓴이)에서 했던 강연 영상을 근거로 들었다. 피터슨은 이 영상에서 "자신의 교회에 두 명의 게이 성도가 있었는데, 한 명은 자살했고 한 명은 이혼해야 했다. 이로 인해 (동성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또 자신의 자식이 게이임을 알게 된 목회자 가정을 도왔던 일도 말했다.
메리트 기자는 이를 소개하면서 "내가 아는 한 피터슨은 오랫동안 하느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온 믿음의 사람"이라면서 "그가 동성혼을 찬성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그와, 그의 사역에 대한 나의 존경심과 아무 관련 없다"며 존중의사를 밝혔다.
피터슨이 자신의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킬지 몰랐을까? 인터뷰어였던 조나단 메리트 기자는 인터뷰에 앞서 "동성결혼과 성소수자는 현대 교회에 가장 민감한 쟁점이다. 피터슨이 목회자는 물론 성도들에게도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그의 견해는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 점을 피터슨 스스로 몰랐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또 자신의 말 한 마디가 불러올 파장을 몰랐어도 문제다. 정확한 속마음은 피터슨 본인만 알겠지만 말이다.
단, 피터슨의 입장문과 메리트 기자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피터슨이 물타기성 말바꾸기를 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피터슨은 "게이들은 내가 섬겼던 다양한 교회, 대학 캠퍼스, 공동체에 있었다. 그들을 방문하고, 영혼을 보살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설교한 일은 목회자로서 책임"이라고 적었다.
상황을 요약하면 존경 받는 신학자조차 동성결혼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았던 차에 관련 질문을 받고 평소 생각의 한 조각을 말했다가 논란이 일었다는 게 사실에 가깝다고 본다.
‘동성애 = 죄' 등식으론 문제 해결 어려워
사실 조나단 메리트 기자가 밝혔듯이 동성결혼과 성소수자를 두고 세계교회가 갑론을박 중이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다. 보수 장로교단은 동성애를 죄악시한다. 동성결혼 역시 한 치의 양보도 않겠다는 기세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지난 7일 이 같은 입장을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보수 예장합동이 성소수자와 함께 했다는 이유를 들어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의 이단성을 심사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임 목사가 속한 기장 총회는 2년째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예장합동의 이단성 심사에 기장이 대책 마련에 부심 중인데, 성소수자 의제에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정하지 못한 터라 기장 총회로선 더욱 난감한 처지다.
피터슨의 입장 변화는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피터슨이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이단'이라느니, 자신의 말에 논란이 일자 슬쩍 말을 바꾸었느니 하는 비판 모두 본질을 비켜갔다. 그보다 교회가 성소수자 의제를 지금보다 한 층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신학적 고민을 깊이 해야 함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5년 미국, 2017년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 동성혼을 법제화했고 앞으로 더 많은 나라들이 동성결혼 법제화에 나설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커플로는 처음으로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동성결혼 합법화를 약속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이기에 성소수자-동성혼 의제를 두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교회는 앞으로도 갑론을박할 것이다.
분명한 건 '동성애는 죄'라는 식의 보수적 접근을 고집하면 교회는 시대흐름에 뒤쳐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지난 퀴어문화축제에서 일단의 기독교인들은 ‘동성애는 죄악이다'는 구호를 주문처럼 외쳤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수만의 행진참가 인파의 함성에 묻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한국교회가 그들만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