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맞는 광복절이지만, 맞는 의미는 매년마다 다르다. 지난 해 광복절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축사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하면서 뜻하지 않게 역사 논쟁이 불거졌다. 뿐만 아니라 전 정권은 건국 주장을 담은 국정역사교과서를 밀어 붙이는가 하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명시한 12.28한일위안부합의를 관철시키며 역사를 모독했다.
다행히 올해 광복절은 새 대통령과 함께 하게됐다. 특히 이번 광복절은 강제징용의 역사가 재조명되는 게 눈에 띤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돼 고된 노동을 강요당한 노동자들을 기리고자 지난 12일 국내에선 처음으로 서울과 인천 부평에 각각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설치됐다. 뿐만 아니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건너편의 ‘평화의 소녀상' 옆에 또 다른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한편 서울시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을 태운 시내버스를 14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운행한다고 밝혔다.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작업은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를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은 줄곧 과거 일제가 저지른 침략전쟁의 역사를 부정해 왔다. 그러다 급기야 아베 정권에 이르러서는 아예 침략의 역사를 지우는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강제징용의 역사가 서린 군함도를 일본 근대화의 상징으로 미화하는가 하면, 일본 에도 막부 말기 정한론을 설파한 요시다 쇼인이 문하생을 가르친 쇼카 손주쿠 유적마저 군함도와 한데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렸다. 이 와중에 일본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는 감추거나 말을 교묘히 왜곡해 본질을 흐렸다.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무섭게 일본 외상 기시다 후미오가 'forced to work'이란 영어 표현이 강제노동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게 대표적이다.
이 지점에서 ‘과연 한국이 일본의 역사왜곡을 무력화시킬만큼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짙은 일제강점기의 그늘
지난 14일 천안시 성거읍 망향의동산에서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억행사가 열렸다. 망향의동산엔 지난 1991년 8월14일 위안부 피해사실을 처음 알린 고 김학순 할머니(동대문교회 권사)를 비롯해, 강제징용 당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무연고 조선인들이 잠들어 있다.
그런데 지난 4월 무연고 묘역에 서 있던 일본인 강제징용 사죄비가 위령비로 무단 교체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요시다 에이지란 일본인이 지인을 통해 벌인 소행으로 알려졌다. 요시다 에이지는 망향의동산에 "사죄비를 세운 사람은 강제징용 책임이 없다. 사죄할 필요가 없다. 위령비가 마땅하다"는 편지를 보냈다. 한편 요시다는 자신을 사죄비를 세운 요시다 세이지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망향의동산을 관리하는 이동은 행정사무관은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요시다 에이지란 인물은 베일에 쌓여 있다. 요시다는 일본에서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을 부정하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을 곧 번역 출간할 생각이다. 요시다 주장의 진위여부를 검증해야 하는데 관련 자료가 빈약한 상태다. 이 사건은 검찰이 수사 중인데 수사기관은 오로지 법적 요건만 따진다. 따라서 수사기관의 수사와는 별도로 이 사람의 주장을 검증할 연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를 무력화시킬 연구 성과는 빈약한 실정이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지 72주년을 맞는다지만, 여전히 지난 역사의 그늘은 짙다.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날로 우경화되는 일본에 제대로 제동을 걸어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를 바로잡는 일은 더더욱 중요하다. 무엇이 중한지 따져 물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