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서울 충정로 이제홀에서는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젊은 기독인 모임'(아래 젊은 기독인 모임) 주최로 ‘차별과 혐오문화 양산하는 7.26한국교회교단장회의 입장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교회교단장회의는 지난 7월26일자 <국민일보>에 동성혼 및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성명을 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젊은 기독인 모임은 교단장 회의의 성명이 차별과 혐오를 부추긴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성소수자 권 아무개씨는 발언을 통해 "교계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차별과 혐오에 앞장서는 모든 순간에, 우리의 교회 공동체 안에도 말없이 숨죽이는 성소수자 기독인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아래는 권씨 발언 전문이다. 편집자 주]
안녕하십니까. 서울 금천에 사는 스물여섯 살 권OO라고 합니다. 저는 남성 동성애자이고, 동시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과연 제가 성소수자 기독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도 되는 것인지, 괜히 멋쩍기도 합니다만, 오늘날 한국교회가 교회 안팎의 성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안타깝고 또 우려스러워서, 굳이 한마디 보태려고 나왔습니다.
오늘날 대형 교단을 중심으로 한 많은 기독교 세력들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며, 정죄와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먼저 돌이키자"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간혹 있습니다만,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뿌리깊은 혐오와 날선 차별은 이미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한국교회를 관통하고 있는 듯 합니다.
특히 정치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서, 거대 교단들이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은 우려스러울 정도입니다. 교단 소속 거대교회의 조직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로 하여금 자신들 앞에 무릎꿇게 만들고, 평등이나 다양성, 인권과 같은 민주공화국의 중요한 가치에 관한 의제는 모두 '동성애 조장 시도'로 폄훼하고 악마화하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한 바 있습니다.
지난 7월 26일 발표된 한국교회교단장회의 입장도 이러한 맥락과 맞닿습니다.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바꾸면 '가정과 가족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시스젠더 이성애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모두 외부의 적으로 돌리고, 배척할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또한, "개헌을 통한 동성결혼과 동성애의 합법화에 반대"한다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제도화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되지않아 시기상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입법적-정치적 움직임이 시도될 때 마다, 행사장을 점거하여 토론회를 무산시키거나, 축제 장소 앞에서 큰북을 치고 차량 앞에 드러누워 행사를 방해하거나, 어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조직적으로 겁박하며 으름장을 놓는 등의 행태를 보면, 오히려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반대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는 이뤄질 수 없다"라는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여러분, 만일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함으로써 간신히 지탱되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참 불행한 삶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위기의 한국교회가 외부의 적인 성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박해함으로써, 자신들의 결속을 도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교계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차별과 혐오에 앞장서는 모든 순간에, 우리의 교회 공동체 안에도 말없이 숨죽이는 성소수자 기독인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무릇 세상에서 상처받고 기댈 곳 없는 영혼들이 찾아와 위안받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제 믿음에는 아직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차별과 혐오에 앞장서며 사회적 소수자를 박해하는 일을 즉시 멈추고, 이제라도 돌이켜 반성해야 합니다.
핍박받고 곤고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먼저 손 내밀며, 우리가 이들의 이웃이 되겠다고 고백할 때,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이 걷히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사회가 시작될 것입니다.
끝으로, 성소수자 인권사역에 힘쓰시다가 부당한 이단 시비에 휘말리신 한국기독교장로회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님에게 무한한 지지와 연대를 표하며 발언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