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스되짚어보기] 마광수 교수 부고에 붙여

마광수, 그는 내게 소중한 스승이었다

soo
(Photo : Ⓒ 광마클럽 화면갈무리)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5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에 광마클럽이라는 비공개 홈페이지를 운영했었다.

소설가이자 연세대 교수를 지냈던 마광수씨가 5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고를 듣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가 대학 시절을 보냈던 1990년대 그의 작품은 내내 논란을 몰고 다녔고, 그 후폭풍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99년 드디어 그의 강연을 들을 기회를 잡았다. 학과 강의에서 그를 특별 강사로 초청한 것이다. 그가 학교에 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당일 강연장은 수강생은 물론 청강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두 오래전 일이라 강연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거침없는 언변으로 좌중을 휘어잡은 일만큼은 또렷이 떠오른다. 또 중간 중간 검사에게 조사 받았던 일을 말해줬는데, 그 대목에서는 깊은 회한을 털어 놓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강연을 그저 노트에 받아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게 참 아쉽다. 지금처럼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 한 마디 만큼은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다소 거친 표현들이 뒤섞여 있지만 그대로 옮긴다. 마 교수는 강의 중에 속어나 욕설을 사용하는데 거침이 없었고, 그래서 그 분위기를 그대로 옮기고자 해서다.

"머리 노랗게 염색하고 자유를 외치던 놈도 자기 와이프는 곧 죽어도 처녀여야 한다 하더라."

'처녀'란 낱말이 어떤 의미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난 아무래도 이 한 마디에 마 교수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마 교수는 올해 1월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견해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남들은 시대를 앞서갔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런 거대한 소명의식은 없었다. 다만 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다. 겉으론 근엄한 척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우리 사회의 행태에 한 번 시비를 걸어 본 것이다. 성에 대한 알레르기 현상을 깨부수고 싶었다."

작가의 작품활동에 국가형벌권 행사가 당연한가?

굳이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들먹이지 않아도 문학을 아우르는 예술이 외설 논쟁을 불러 일으킨 경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개입해 형벌권을 행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의 연인과 ‘불장난'을 벌였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야 했다. 그를 심문하던 검사는 오스카 와일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청년들을 미친듯이 사모했습니까?"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가로서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을 나눴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이 같은 자기변론에도 공권력은 그를 기소했고 결국 2년 동안 옥고를 치러야했다. 2년간의 옥살이는 재기 발랄한 작가를 파멸시키고야 말았다.

마 교수 역시 비슷한 수난을 당했다. 마 교수를 구속한 검사의 주장을 들어보자.

"인간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수의 신분에 그것도 유명 대학의 교수가 공동체 존립을 저해하고 성적 쾌락이라는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무책임한 소행이다."

얼핏 그럴듯 하다. 그러나 교수를 비롯해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일탈을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정의의 사도 인양 착각하는 검찰은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스폰서 의혹으로 여론의 화를 돋궈왔다. 한편 성적 일탈의 으뜸은 성직자다. 강단에서 근엄하게 하느님 말씀을 설파하던 유명 목회자가 수년에 걸쳐 다수의 여성을 성추행한 건 이젠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됐다. 이런 와중이니 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랫도리(?)를 자극하는 소설을 썼다한들 이게 검찰이 나서서 기소권을 행사할 일일까?

시대를 한 걸음 앞서간 마광수

본인은 부정하지만 아무래도 마 교수는 시대를 한 걸음 앞서간 것 같다. 그에 대한 기억을 복기하다 보니 마 교수가 한 말 하나가 더 떠오른다. 그 말은 이랬다.

"난 새로 여자를 만나면 속궁합부터 맞춰보고 싶다."

아마 그 시절엔 ‘속궁합'이니 하는 말을 공개석상에 올리면 요새 유행하는 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일(?)게 분명하다. 그러나 요사이 남녀를 불문하고 새로 이성 친구를 사귀면 이런 말부터 하지 않던가?

세상사에서 만약이라는 질문은 공허하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아마 지금 마 교수의 소설이 나왔다면 그가 이토록 수난을 당했을까? 혹시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분들이 심사가 뒤틀려 마 교수를 표적 삼은 건 아닐까?

비록 한 번의 강의였지만 그는 내게 강렬한 기억을 선물해줬다. 당시 내가 질문을 던지긴 했는데 어떤 질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질문을 받더니 ‘아,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라고 칭찬해준 일만 기억에 남는다.

그런 마 교수가 떠났다. 그가 하늘나라에서는 원하는 속궁합 실컷 맞추며 지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심이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16세기 칼뱅은 충분히 진화론적 사유를 하고 있었다"

이오갑 강서대 명예교수(조직신학)가 「신학논단」 제117집(2024 가을호)에 '칼뱅의 창조론과 진화론'이란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정태기 영성치유집단이 가진 독특한 구조와 치유 의미 밝혀

정태기 영성치유집단을 중심으로 집단리더가 구조화된 집단상담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경험하는지를 통해 영성치유집단이 가진 독특한 구조와 치유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학철 교수, "기독교 신앙인들이 진화론 부정하는 이유는..."

연새대 김학철 교수(신학과)가 상당수 기독교 신앙인들이 진화론을 부정하고 소위 '창조과학'을 따르는 이유로 "(진화론이)자기 신앙의 이념 혹은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원효의 체상용의 삼위일체론

아우구스티누스 사상과 원효의 체상용의 불교철학 사상을 비교 연구한 글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손호현 교수(연세대 신과대학)는 얼마 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