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김경재 목사 1998년 8월 9일 설교

경동교회/ 당시 경동교회 협동목사

알지 못하는 신

 
사도행전 17장 22~25절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은,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서 45장 5~7절

"나는 주다. 나밖에 다른 이가 없다. 나밖에 다른 신은 없다. 네가 비록 나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는 너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겠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해가 뜨는 곳에서나, 해가 지는 곳에서나, 나밖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겠다. 나는 주다. 나밖에는 다른 이가 없다.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한다"

지리산에 쏟아진 폭우로 참변 당한 시신들을 다 찾아내어 수습하지도 않았는데 지난 며칠 쏟아진 폭우로 또 218명의 인명피해와 엄청난 재산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의 무력감을 절감하며 우주 자연 속에서 인간도 하나의 연약한 풀벌레 같은 생물일 뿐임을 깨닫게 될 뿐입니다. 특히 이번 수재로 사랑하는 어린 자식을 잃고, 가족을 잃고, 아내나 남편이나 노부모를 잃고 애통해하는 희생자 가족들의 창자를 찢는 듯한 아픈 맘을 깊이 함께 애도하지 못하고 "참 안됐다"는 식으로만 지낸 지난 주일의 우리 무디어진 심성을 참회합니다. 폭우 속에서 희생당한 내 육친의 시신이 바르게 아직 거두어지지 못하고 강속 흙탕물 속이나 흙덩이 속에서 부패되어 간다고 생각할 때 오장육부를 쥐어짜는 듯한 그 아픔을 무어라 위로하며, 이 현실 앞에서 주일설교는 무엇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첫 번째 본문말씀인 사도행전 17장 23절에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구절이 발견됩니다. 인간의 종교생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신적 절대자를 찾고 부분적으로 경험하고, 예배하고, 예배대상을 교리나 신학으로 설명하면서 지내지만 본질적으로 '우주의 궁극적 실재'는 아직 다 해명되어 버릴 수 없는 '알지 못하는 차원'이 항상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더 이상 우리에게 신비로울 것이 없는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일 수 있겠습니까? 그 불가해한 신적 속성의 능력과 엄위와 높이와 깊이를 인간의 두뇌와 말로 다 설명이 되어버리는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머리가 맘대로 조종하는 하나님이요, 그런 하나님을 머리 속에서 다 헤아릴 수 있는 그 머리를 가진 인간은 헤아림 받은 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일 것입니다.

이번 같은 엄청난 재해를 당하여 우리는 보다 근원적으로 우주 안에서 겸손해야 하고 하나님 지식에 관해서도 겸비해져야 하겠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한 복판에서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와 구원을 신비한 개입을 통해 건져내실 수 있겠지요. 우리는 삶속에서 도저히 설명되지 않지만 그런 체험을 종종할 뿐만 아니라 성경에도 그런 사례에 대한 간증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은 지리산 계곡에 물이 불어나 급류에 모든 것을 휩쓸어 갈 적에 그 가운데서 주일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를 특별 예외 케이스로 빼준다든지, 독실한 교회집사나 성직자 가족의 천막에는 물살이 피해가도록 돌봐준다든지 그러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주 경기 북부 폭우로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귀가하는 어느 교회 목사부부의 승용차가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가 그것을 잘 반증합니다. 이 엄청난 자연재해를 통하여 하나님은 인간들을 표적사정하듯이 골라서 수장시키거나, 대기 중에 구름을 일부러 만들어서 생명과 재산을 희생시킨 직접 장본인은 아니시지만 이 모든 자연재해, 폭우, 화산폭발, 지진, 교통사고 등등의 재난이 하나님 모르게, 하나님 없이, 하나님 부재중에 일어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 신앙에 있어서 너무 단순 도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참으로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할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 앞에 옷깃을 여미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특별한 설교 주제 아래서 우리가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점은 창조주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되 내가 좋은 대로 제멋대로 상상하는 그런 신앙은 편안할는지 모르나 성서적 신앙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45장 7절 본문을 보면 "나는 주다, 나밖에 다른 이가 없다.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견딜 수 없는 고생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아니면 이 우주에는 평안을 일으키는 빛의 신이 있고 그와는 별도로 재앙을 일으키고 어둠을 지은 또 다른 신이 있어서 신들의 전쟁 속에서 인간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으로 고생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당시 상식적 신관에 혁명적 이해를 하도록 촉구한 것이 이사야 선지자였습니다. 세상에는 선신 악신 따위의 그런 이원론적 세계관 신관은 허구이고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맘씨 좋은 할아버지 인양 빛과 평안만을 주고 재앙과 어둠에 대하여는 손도 못 대는 그런 창조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욱 조심해서 들어야 하는 것은 이사야가 전하는 창조주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이 마치 저 헬라의 야누스 신처럼 신의 앞 얼굴은 평안이요, 신의 뒷얼굴은 어둠과 재앙을 지닌 그런 두얼굴을 지닌 신이 아니라, 빛과 어두움을 지으신 하나님이요, 평안과 재앙을 관장하시는 절대자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분명하게 끊어 말한다면 신적 속성 안에 빛과 어둠, 선과 악, 평화와 파괴라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지닌 그런 이교적 신이 아니라 그것들을 동시에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 양면성을 초월하시는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겪고 이스라엘 신앙이 도달하고 체험한 유일신 신앙의 본질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하여 생각해야 하는 것은 신약시대에 들어와 본질적으로 우리 인간이 이성으로나 지식으로 '알지 못하는 신'이 보혜사로서 인간의 마음 안에 진리의 영으로 빛을 조명하시고, 맘이 깨끗하고 겸손한 사람 속에 스스로 계심으로 그 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계시적 하나님이시면서도 영원히 은폐된 감추이신 하나님이시듯이, 본질적으로 말하면 성령도 우리 자연 인간에겐 '알지 못하는 영'인 것입니다. "세상은 그 분을 곧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만 그 보혜사 성령께서 먼저 움직이셔서 어두워진 우리 심령을 밝히시면, 강퍅해진 우리 의지를 부드럽게 하시며, 오만해진 우리 이성을 겸허하게 하시면서 우리 생명 안으로 들어오실 적에 우리는 그분의 임재 안에서 진정한 자유, 평안, 희락, 충만, 치유를 얻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기를 원합니다. 성령이 거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곳은 웅장한 베드로성당도 아니고 휘황찬란한 교회당 건물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가지고 겸허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의 그 '마음'안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지금부터 약 1950년전 갈릴리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들고 당시 지성과 철학의 중심도시 아테네에 도달한 사도 바울이 해괴한 부활의도를 전하다가 붙잡혀 재판을 받으러 아레오바고 법정에 잡혀가서 행한 일장 연설 일부를 본문말씀으로 읽었습니다. 여행객들이 별관심도 갖지 않고 지나치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근방에 위치한 아레오바고 언덕 위에는 시민들의 소송문제를 판결해주는 시민 법정이 있었습니다. 자유도시국가답게 모든 새로운 학설이나 신념을 정죄하기 전에 맘껏, 소신껏 피력하게 하는 소명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 아레오바고 언덕 어딘가에 세워진 법정 뜰에 서서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7장 22부터 31절의 내용을 피력하였습니다. 에피큐리안들과 스토아 학파 학자들, 아테네 지성인들이 수십명 들러선 가운데 위압하듯이 저 멀리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그리스도 복음의도를 설파한 바울의 그 신앙과 용기를 새삼스럽게 마음에 떠올립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재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으신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은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명도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다' 라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설교요, 놀라운 복음의 말씀입니다. '알지 못하는 신'은 어디 우주 끝에 거하는 또 다른 세계의 절대군주도 아니고, 존재의 깊은 심연 속에서 철학자들의 연구를 통한 접근을 기다리고 있는 어둠의 심연동굴에 거하지도 않습니다. 그 '알지 못하는 신'이 곧 이사야가 말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신 분이요,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키는 주이십니다" '알지 못하는 신'인 그 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이시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알지 못하는 신'은 공의를 비처럼 쏟아지게 원하시며, 땅은 그 의로운 비를 받아서 구원의 싹이 나게 하고 '공의'가 움트게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알지 못하는 신'이 진정 누구인줄 우리는 마지막 종말의 날에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까지는 온전히 알지 못하지만 한가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심정을 나타내신 것으로서 확신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신'의 속성 중심엔 '긍휼과 신실'이 있고 '거룩과 의로우심'이 있어서 그를 예배하는 자들이 그를 닮아 '진실하고 신실하여 공의를 추구하며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임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재난 속에서 사랑하는 자녀 형제 부부 부모 친구를 흙탕물과 흙무덤 속에서 잃고 가슴이 찢어지는 동족들에게와 재산을 홍수 속에 다 떠내려 보내고 망연자실하는 동족에게 말없는 위로와 힘닿는 대로의 의연금을 모아 조금이나마 재기의 용기를 북돋우어 줍시다. 그것이 우리 속에서 속삭이는 '알지 못하는 신'의 음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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