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김경재 목사 1998년 9월 27일 설교

경동교회/ 당시 경동교회 협동목사

영원한 현재, 한 낮의 삶
 

시편 90편 3~12절

주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죽을 인생들아, 돌아가거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서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주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한 순간의 꿈일 뿐, 아침에 도든 한 포기의 풀과 같을 따름입니다. 아침에는 돋아나서 꽃을 피우다가도, 저녁에는 시들어서 말라 버립니다. 주께서 노하시면 우리 삶이 끝이 나고, 주께서 노하시면 우리는 쓰러지고 맙니다. 주께서 우리 죄를 주님 앞에 내놓으시니, 우리의 숨은 죄가 주님 앞에 환히 드러납니다. 주께서 노하시면, 우리의 일생은 사그라지고, 우리의 한 평생은 한숨처럼 쓰러지고 맙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며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주의 분노가 발산하는 능력을 누가 알 수 있겠으며, 주의 진노가 가져 올 두려움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주십시오.

야고보서 1장 17~18절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인데,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꼐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는, 변하는 것이나 움직이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뜻을 정하여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주셔서, 우리를 피조물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15일간을 주기로 해서 1년을 정확히 24절후로 나눈 우리 조상들의 월력을 따르면, 계절의 절후는 백로 추분을 지났고 한로 상강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추석이 있는데,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 우리 교회의 감사절 예배가 다음 주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신속하게 흘러 지나가니 시편기자의 표현대로 우리가 날아가는 듯 합니다. 창조절 넷째주일 예배를 이 아침에 드리면서 중추절을 한주일 앞둔 오늘 우리는 시간의 주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피조물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영원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부분적으로 경험하며 살것인가에 대해서 성경말씀에 경청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태어나면 모두 죽는다는 자명한 명제에 익숙해져서, 사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성에 대하여 아주 둔감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다 한번 태어나면 유한한 삶을 살다가 조만간 다 죽을 것이라는 이 엄연한 사실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대담하고 태연하고 담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해서 우리의 유한한 시간성에 대하여 정말 대담하고 태연하고 담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그저 대담하고 담담한체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한성과 시간성에 대하여 진지한 물음 묻기를 포기한 사람의 모습과 그것을 영원한 빛 안에서, 신앙 안에서 극복한 사람의 담담한 모습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종교인이라면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하늘의 빛을 한번 쪼임받고 그 영광의 광휘와 영생의 생수에 한번 목을 축인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믿지 않는 일반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계절의 절후가 바뀌는 오늘같은 날 하루만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날을 계수할 줄 아는 지혜의 맘"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창조주가 우리 존재의 옷으로 덧입혀주신 우리 존재의 집, 이 '시간성'이란 그 본질이 어떤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시간과 성령의 강림시간에 홀연히 구름을 뚫고 비취는 찬란한 햇빛처럼 잠깐 비취었던 영원이란 무엇인지, 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영원과 맞닿는 경험, 영원이 우리의 시간 속으로 텃취해 들어오는 경험을 하면서 살아 갈 수 있는지를 깊이 한번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무엇이냐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하여, 고대 어거스틴부터 현대 화이트헤드에 이르기까지 걸출한 철인들과 사상가들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로 이해되고 설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성경에 의하면, 신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자명하게, 자존하는 어떤 실재가 아닙니다. 시간은 창조와 더불어 실재하게 된 것, 피조된 것, 피조물의 존재방식이고, 피조물의 존재의 집이고, 피조물이 무의 심연에 삼키움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세워주신 조재의 방벽이라는 것입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에는 시간이란 없고 시간의 흐름도 없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 곧 영원성만 있었을 뿐입니다. 영원은 시간이 아닙니다. 영원은 시간과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원은 우리 피조물이 경험하는 그런 흘러가는 유한한 시간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생명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듯이 시간의 주인이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모두 더 이상 시간을 향유하지 못하는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을 만날 것입니다. 그 유한한 시간속에 우리를 두셨지만, 비록 우리의 시간이 유한하고 한정된 것일지라도이 유한한 시간은 무정하고 냉정한 운명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니의 선물이요,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감사의 맘으로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소유하거나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고 있는 것이요, 그 유한한 시간을 본래 창조의 질서대로 바르고 아름답고 성실하게 향유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시간에 대한 교만과 태만과 기만은 우리 죄성의 표현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잠시 우리를 당신의 창조의 동산에 들여놓으시고 생명의 빛을 쪼여주시며, 해가 저물기 전에 한번 아름답고 멋있고 즐겁고 보람있게 놀이다운 놀이를 한번 해보라고 우리에게 시간과 생명의 빛을 비춰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우러러 봐야 합니다.

우리는 창조주가 아닙니다. 시간의 주도 아니고, 생명의 주인도 아니고, 생명동산의 주인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찬양하도록 지음받은 자유인입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하나님이 이루시고 완성하실 영원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이라 일컫는 이 풍진 세상 속에서, 유한한 병든시간 조각난 시간 속에 살면서도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리고 성령의 임재를 통해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면서 살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 갑니다.

나는 그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의 비법을 그림자 비유로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플라톤의 영원한 동굴의 비유속에서, 플라톤은 인간이란 동굴속에서 갇혀사는 죄수가 동굴벽에 비취는 그림자를 보고 그것이 실재이려니 착각하면서 사는 생활과 같다고 비유한적 있습니다. 사실 혈육적 인간은 사물의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들을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조각난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적 삶은 그림자를 보면서 사는 삶입니다. 그림자는 왜 생깁니까? 태양의 빛 때문에 생깁니다. 아침과 저녁엔 그림자가 깁니다. 그림자란 곧 시간성의 상징입니다. 그림자는 항상 나를 따라 다닙니다. 해는 우리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의 상징입니다. 해를 등지고 서면, 항상 우리는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만 보고 살게 됩니다. 해를 바라보고 서면 우리 자신의 그림자는 우리 뒤에 생기고, 우리는 해를 보게 됩니다. 그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살면 우리 그림자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서 살땐, 우리 그림자는 우리 뒤에 드리워졌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아니할 뿐입니다.

모든 사물을 환하게 보는 대낮의 삶을 살면서도 그림자 없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그것은 한낮, 정오의 시간, 태양이 바로 우리 머리의 정수리 위에서 비취는 그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영원한 현재의 시간입니다. 언제 생명의 태양은 우리의 머리 바로 위에서 비취어 시간 속에 있는 우리가 영원을 경험하게 됩니까? 그것은 생명의 말씀 안에 우리가 잠길 때입니다. 그 존재의 정오시간은 우리가 사랑할 때입니다. 그 시간은 우리가 조건없는 봉사와 감사의 찬양을 할 때입니다. 그러한 시간은 성령이 우리의 심령을 은혜로 감싸실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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