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전반부, 즉 원역사(Primal History)에 나타난 인간 창조에 관한 성경 본문을 보고 있자면 이야기가 두개(창1:26-31, 창2:4-25)로 나눠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 부분은 만물을 지으시는 천지 창조의 사건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 창조를 말하고 있다면, 뒷 부분은 만물을 제쳐두고, '흙'(Adama)으로 지으신 인간 창조 이야기부터 먼저 꺼낸다.
원역사를 기록했다는 히브리인들이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두개로 병렬 배치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6일 '창조설화에 나타난 인간의 본성과 운명'이란 전체주제로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갈릴리복음 성서학당 2학기 강좌가 그 문을 열었다.
▲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
삭개오작은교회에서 늦은 오후 수요예배를 대신해 열린 이날 첫 강좌의 주제는 '인간창조설화의 두 초점은 흙과 신의 형상'. 김경재 교수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창세기. 특히 원역사는 강의 제목에 나타난 대로 창조 설화임을 분명히 했다.
김경재 교수는 이 창조설화는 △ 먼 인간의 집단적 기억이 반영 되어있는 설화(형제살인설화, 홍수설화, 바벨탑설화)도 있지만 △ 신화적 설화 형태(창조설화, 인간 타락설화)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도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그 중에서도 신화적 설화(Myhtical Narrative)를 두고는 “종교적 진리를 나타내는 문학형식을 의미한다”고 했다.
또 창조 설화를 기록한 히브리인들의 시대적 상황을 꿰뚫어 보는 것이 주석학적 성서 해석에 있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도 조언했다.
◈ 인간 창조 첫째 이야기= 하나님의 창조사역 제6일에, 다른 동물들과 같은 날 인간이 창조된다. 김경재 교수는 “이는 요즘 언어로서 말한다면, 생물학적 범주로서 볼 때는 인간도 야생동물, 가축, 파충류와 동일범주의 한 생물학적 피조물이라는 관점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인간은 천상에서 노닐다가 타락하여 땅에로 추방당한 신들의 자녀라거나 신적 혈통을 물려 받은 특수존재라고 보는 등 고대 바벨론 문명이나 그리스문명, 인도·중국 문명 등에서 나타나는 신통계적 인간 창조 설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첫번째 창조 이야기에서 나오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창1:26) '남자와 여자 창조로 창조하시고'(창1:27) '땅을 정복하게 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창1:28)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등에 관한 친절한 해설도 이어졌다.
김경재 교수는 특히 '하나님 형상론'에 지나치게 신학적-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못 마땅해 했다. 그는 “본문형성의 시대적 배경과 편집 집단의 의도를 생각할 때, 고대사회에서 부족, 종족, 피부색, 강약국의 국적 등에 따라 인간 차별을 당연시 하던 무법천지 시대상황 속에서, 모든 인간은 '왕의 형상'이 존귀하듯이 '신의 형상'을 닮았음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간 존엄성의 선언'의 의지가 간접적으로 피력되어 있는 것”이라며 “지나친 신학적, 철학적 해석은 이 같은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땅을 정복하라'는 본문이 십자군 전쟁 혹은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의 신앙적 근거로 사용된 것에 안타까움을 호소하며 “'땅을 정복하라'의 히브리어 원 뜻은 '경작하라'에 해당한다”면서 “'생물을 다스리라'는 직책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착취 대량 살상 등을 의미하지 않았다. 진정한 통치자 왕은 국민의 복지에 노력하며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는 '돌봄'을 의미했다”고 했다.
◈ 인간 창조 둘째 이야기= 김경재 교수는 이어 인간 창조 둘째 이야기는 천지 창조에 관심이 있지 않고, 곧바로 인간이란 무엇이며 그 존재 의미가 무엇이며 존재 방식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흙으로 빚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는 인간 창조 이야기를 놓고, 김경재 교수는 먼저 “인간 존재의 피조성, 유한성, 자연성을 철저하게 긍정하도록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인간 창조 둘째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으로는 △ 인간의 존재 근거와 존재 양식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 △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자연에 속해 있는 것 △ 인간은 생물 중 하나이지만,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살고, 피조 세계의 '경작'을 위임 받은 존재라는 것 △ 인간은 언어사건으로 '이름짓는' 특수존재가 되며, 남자·여자 관계는 종속적인 게 아니라, 불가분리적 관계라는 것 등을 들었다.
이 같은 김경재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히브리인들은 생물학적 범주 내에서 공통된 창조 사건 과정 가운데 탄생한 인간, 즉 만물과 함께 조화롭게 창조된 인간을 말하려 했던 것이며 그와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피조 세계의 '경작'을 위임 받은 특수한 존재로 인간이 창조 됐음을 말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 강좌는 13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에덴 타락설화는 나의 실존이야기'를 주제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