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세습 논란이 개신교계 안팎에서 연일 화제다. 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예장통합, 최기학 총회장) 본부가 있는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는 명성교회 세습 철회와 총회의 공의로운 결정을 촉구하는 일인시위가 진행 중이다. JTBC뉴스룸은 지난 주에 이어 28일 오후 또 다시 명성교회 세습 논란을 집중 보도했다.
거센 논란을 의식한 듯 명성교회는 지난 24일 당회원 일동 명의의 입장문을 내놓았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명성교회의 담임목사 청빙 과정에서 서울동남노회와 총회에 속한 구성원들이 가지고 계신 염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겠"으며 "앞으로 명성교회가 이전보다 더 성숙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상처받은 노회와 총회에 더 가깝게 다가서서 겸손히 섬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불러온 근본원인인 김하나 목사 위임청빙에 대해서는 "청빙위원회 및 당회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2017년 3월 19일 개최된 공동의회에서 총 8,104명이 투표하여 찬성 5,860명, 반대 2,128명, 기권 128명으로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따라 통과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전에도 명성교회 측은 신도들의 언론 기고를 통해 김 목사 위임 청빙이 '공동의회 투표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했다. 결국 당회가 낸 입장문은 그간 고수해오던 입장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명성교회측 입장은 법리 논쟁을 부를 여지도 충분하다. 명성교회측은 입장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명성교회는 공동의회에서 통과된 안을 놓고 오랫동안 기도하던 중 제101회기 총회 헌법위원회가 대물림방지법에 대해 '본 교단이 채택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과 정치 원리 등에 합당치 않아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사료되어 수정, 삭제, 추가 즉 보완하는 개정을 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결의했습니다. 헌법위원회는 총회 임원회가 받아들인 헌법 해석을 제102회 교단 총회에 보고했고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대목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예장통합은 헌법으로 "해당 교회에서 사임(사직)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의 위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월 이 교단 헌법위원회는 "목사 청빙은 교회(성도) 권리이다. 헌법에 따르면 교단은 교회의 자유(교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장로교는 대의 정치와 회중 정치에 근거하고 있다. 헌법 정치 제28조 6항(세습금지법)은 이를 위배하는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것으로 사료되므로 수정·삭제·추가 즉 보완하는 개정을 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헌법위원회의 유권해석은 명성교회측 세습 논리에 힘을 실어줬다. 명성교회측 논리를 요약하면 헌법위원회가 세습방지조항이 교회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개정 권고 의견을 냈으니, 세습은 적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성교회의 입장은 교단 헌법 시행규정과 충돌한다. 예장통합 헌법 시행규정 7조는 "헌법이나 이 규정의 시행유보, 효력정지 등은 헌법과 이 규정에 명시된 절차에 의한 조문의 신설 없이는 총회의 결의나 법원의 판결, 명령으로도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 대로라면 헌법위원회의 유권해석이 기존 헌법 조항을 폐기시킬 수 없다. 세습에 반대하는 쪽이 명성교회 측 논리를 반박하는 근거도 바로 시행규정 제7조다.
이 같은 논란과 별개로 명성교회는 김하나 목사 체제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모양새다. 당회의 입장문에서 이 같은 의도가 드러난다. 또 지난 26일 주일예배에서 1·4부 예배는 김삼환 원로목사가, 2·3·5부 예배는 김하나 목사가 나란히 집례하기도 했다.
위임청빙 무효가 끝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인다. 기독교계 안팎에서 명성교회 세습에 반대 목소리가 높은데, 과연 이 같은 반대 목소리가 성공적으로 관철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현재 서울동남노회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동남노회 비대위)는 세습 무효 소송을 낸 상태다. 총회는 60일 이내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경우의 수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먼저 총회가 명성교회 측 손을 들어줬을 경우다. 이 경우 거센 사회적 논란에도 예장통합 총회가 대형교회의 눈치를 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도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총회가 세습 반대측 손을 들어줬을 경우, 명성교회 측이 순순히 김하나 목사 위임 청빙을 무효화하고 제3의 인물을 찾으려 할까? 사실 이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교회 대물림은 교회의 기득권 유지는 물론 1세대 목회자의 권력 유지를 목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따라서 예장통합 총회가 설혹 김하나 목사 위임 청빙 무효를 선언한다손 치더라도 김삼환 원로목사는 어떤 식으로든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방안을 짜내려 할 공산이 크다. 만약 김 원로목사가 친아들이 아니어도, 자신의 의중에 민감하게 반응할 사람을 후임으로 정했다면, 그땐 세습에 반대해온 이들은 어떤 논리를 내세워 반대운동을 벌일 것인가?
현 시점에서 명성교회측 입장은 다소 궁색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마냥 안심할 일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세습은 교회타락의 결과이니 무조건 반대한다'는 구호만으로는 절대 사태를 올바른 방향으로 풀어갈 수 없다.
요약하면, 명성교회 사태는 김하나 목사 위임 청빙을 물린다고 풀릴 일이 아니다. 세습 철회를 관철시킴과 동시에 명성교회를 공교회로서 바로 세우기 위한 섬세한 전략을 마련해 접근해 나가야 한다. 세습에 반대하는 분들의 간절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간절함만으로는 부족하다. 냉철함이 동시에 요구된다.
악보다 더 성실해야 한다. 그래야 악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