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잘한 것으로 본다"
국내 최대 장로교단인 예장합동 교단 산하 목회자납세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정부의 종교인과세 시행 방안에 대해 남긴 한 줄 평이다. 소 목사의 평가대로 보수 기독교계는 나름 선전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기획재정부(아래 기재부)는 28일 2018년 1월 시행 예정인 종교인소득 과세제도를 보완하겠다며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아래 개정안)을 내놓았다. 개정안의 핵심 뼈대는 종교인소득의 과세 범위를 '소속 종교단체로부터 받는 소득'으로 한정했다는 것이다. 이 개정안에서 승려에 지급하는 수행지원비(불교)나 목회활동비(개신교), 성무활동비(가톨릭) 등 종교인이 종교단체로부터 '종교활동에 사용할 목적으로 받은 금액'(종교활동비)은 과세 대상에서 빠졌다.
기재부는 종전엔 목회활동비를 포함해 총 40여 가지 항목에 대해 세금을 신고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보수 개신교계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목회활동비가 드러나는 걸 꺼려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시사저널>은 11월24일치 보도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기독교 일각에선 보수 대형 교회 위주로 구성된 단체들이 이런저런 논리를 만들어 종교인 과세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그동안 ‘성역'으로만 여겨졌던 목사들의 목회활동비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략) 40개 과세 항목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목회활동비다. 목회활동비는 대부분 실비처리가 되지만, 사실상 목회자에게 주는 또 다른 형태의 월급이나 다름없다. 아예 교회 명의의 신용카드로 지급되는 경우도 많다. 목사 개인이 마음대로 사용하되 증빙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목사들의 ‘특수활동비'란 별칭까지 붙는 돈이다. 이 돈의 크기는 교회 규모에 따라 적게는 월간 수백만원, 많게는 연간 수십억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종교활동비의 과세 대상 제외는 보수 개신교계로서는 반길 일이다.
보수 개신교계가 좋아할 만한 항목은 또 있다. 바로 종교인소득 세무조사 범위에 관한 내용이다. 기재부 개정안에 따르면 종교단체는 소속 종교인에게 지급한 금품 등과 그밖에 종교활동과 관련해 지출한 비용을 구분해 기록, 관리하도록 규정했다. 즉, 종교단체회계외 종교인회계를 분리하라는 말이다. 여기에 세무조사 시엔 "종교단체가 소속 종교인에게 지급한 금품 외의 종교 활동과 관련하여 지출한 비용을 구분하여 기록·관리한 장부 등은 조사대상이 아님"을 명시했다. 무슨 말이냐면 세무조사는 종교인회계에만 한정한다는 말이다.
보수 개신교계는 지난 14일 기획재정부, 국세청과 가진 간담회에서 종교단체를 세무조사에서 배제하면 종교인과세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교회 공동 태스크포스 위원장으로 참석한 소강석 목사는 "종교단체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종교의 존엄성을 지키려면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을 확실히 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부는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개정안의 세무조사 범위 관련 내용을 보건데 보수 개신교계의 요구가 일정 수준 관철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30일 입법예고를 한 뒤 다음 달 14일까지 부처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이어 12월21일 차관회의, 12월26일 국무회의를 거쳐 12월29일 소득세법 시행령을 공포할 계획이다.
과세 피한 ‘목회활동비'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이대로 개정안이 확정된다고 가정할 때, 과연 종교인과세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종교인과세는 세수증대 보다는 재정 투명성 확보에 방점이 찍힌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재정 투명성 확보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먼저 개정안은 종교인이 소속 종교단체로부터 받는 소득만을 세금 신고 대상으로 규정했다.
만약 개신교 목회자의 경우 A교회를 담임하는 김아무개 목사가 B교회의 초청으로 부흥회를 인도하고 받은 사례비는 과세 대상이 아니다. 중대형 교회 담임목사가 한 번의 부흥집회로 받는 대가는 일반인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돈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는 건,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기본 원칙과 괴리가 있어 보인다.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예 월소득 자체를 적게 책정하고 교회로부터 '목회활동'을 위한 비용을 더 많이 받아가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방문하는 활동을 '심방'이라고 한다. 목회자가 성도들이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는지 돌아보고 격려하는 행위는 목회자 본연의 활동이다.
그런데 목회자의 방문을 받은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돈을 건네는 일이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다. 중대형교회 목회자의 경우 심방비용은 수백만원에 이른다는 게 정설이다. 개정안대로라면 이런 과외수입(?)에 세금을 부과할 근거가 없어진다. 이러니 보수 개신교계로서는 개정안이 나쁘지 않은 셈이다.
회계를 종교단체회계외 종교인회계로 분리하고, 세무조사 대상을 종교인회계로 한정한 점도 한계가 명백하다.
기자가 서울에 있는 B교회에서 직접 겪었던 일이다. 이 교회에서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중에 인근 주민들이 교회 주차장 시설 이용을 희망하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허가해 줬다. 월 단위로 이용금액을 부과했는데, 국산차의 경우 처음 3개월은 7만원, 4개월째부터는 8만원이고, 외제차는 무조건 8만원을 내도록 했다. 이 교회 주차장의 수용규모는 총 42대. 국산차 기준으로 만차 운영시 월 총 294만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이 경우 주차장 제공에 따라 교회가 얻는 수익은 분명한 과세 대상이다. 월정액을 내야 주차가 가능하고, 따라서 이 월정액은 대가성이 전제되는 수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세무조사 범위를 종교인회계로 한정한다면, 과세 당국은 주차장 같이 교회나 다른 종교 기관들이 공공연히 벌이는 수익사업에 대해 아무런 개입의 근거를 갖지 못한다.
한 마디로 착잡하다. 박근혜 전 정부 시절이던 2015년, 종교인과세는 공론의 장으로 나온지 47년 만에 국회문턱을 넘었지만 2018년 시행을 앞두고 취지가 많이 퇴색된 것 같아서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대형교회 장로인 정치인과 보수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종교인과세 시행을 막으려 앞장서 실력을 행사했다. 심지어 국내 최대 보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은 종교인과세가 '교회를 정부의 관리하에 두려는 의도'라며 정부에 날을 세웠다. 실로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한 걸음 뗀 것으로 의미를 찾아야 할까, 아니면 한 걸음 밖에 나가지 못한 데 아쉬워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