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김경재 목사 1998년 11월 29일 설교

경동교회/ 당시 경동교회 협동목사


어둠 속에서 비취이는 빛

창세기 1장 1-5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누가복음 2장 67-69절, 76-80절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렇게 예언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돌보아 속량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권능의 구원자를 당신의 종 다윗의 집에서 일으키셨다.

아기야, 너는 가장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먼저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에서 오는 것이다. 그분은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아기는 자라서, 심령이 굳세어졌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고린도후서 4장 6-10절

"어둠 속에서 빛이 비쳐라"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엄청난 능력이 나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가지로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교회력상 대림절(待臨節)이라고 부르는 교회절기로 들어감니다. 대림절은 금주부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성탄주일 직전까지 4주동안을 말하며 일명 대강절(待降節)이라고도 부름니다. 글자그대로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그 오심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우리 삶을 정리하여보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대림절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어떤 의미있는 사건을 기다리는 미래,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을 기다리는 그런 성격의 미래와 관련된 교회절기라는 것을 세삼스럽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미래를 나타내는 라틴어 단어에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형성해가는 것'으로서의 미래 '퓨투룸'(futurum) 이고, '오고있는 것'으로서의 미래 '아드벤투스'(adventus)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대림절은 그 본질에서 인간이 시간의 주체가 되고 사건발생의 주인이 되는 그런 미래가 아니라, 우리를 향해서 이리로 오고있는 진리의 님을 겸허한 맘으로 기다리며 모셔드리는 미래와 관련된 절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미래'라고 하면, 아직 아무것도 씌여지지 않는 흰종이 위에 내가 그림을 그려넣거나 글씨를 써가는 벡지와같은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래'는 우리들의 의지와 결단과 행동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광장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란 아무도 아직 달려가보지 않은 운동장을 먼저 달려나가는 행위가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너무나 강해서, '이리 오고있는 미레'라는 개념은 거의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달력을 한장넘길 때마다, 일주일 뒤 또는 열흘 뒤 무슨 날엔 어떤 일을 하리라고 동그라미를 쳐 표시하고, 수첩에 약속을 미리 하여 기입해두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란 본질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속하고, 인간의 형성의지에 속하고,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래는 인간이 임의대로 처분할 수 있는 '소유'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마지막 임종시간이 가까워 질 때에라야, 시간은 내 맘대로 내가 처분할 수있는 소유이거나, 내 손 안에 든 재산 같은 것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됨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현대인 우리들은 '미래'란 오고있는것, 기다리면서 창조주 하나님으로 부터 은혜로서 받아야 하는 것, 예기하지 않았던 선물이라는 감정을 거의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오늘 누가복음서 사가랴의 예언가운데 나오는 말씀들은 본질적으로 '기다림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림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세례요한의 아버지였습니다. 사가랴가 제사장으로서 봉사하는 차례가 되어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일을 맡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이는 자라서 주님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가 될 것이라는 것, 그 일이 일어나게 될 때까지 벙어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정하자 벙어리로 굳어진 그의 혀가 풀리고 말을 하게 되면서 사가랴는 예언적 성격이 짙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게 됨니다. 사가랴의 찬양의 예언시 핵심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어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약속을 잊지 아니하시고 권능의 구원자를 보내실것이라는 것. 앞으로 닥아오는 메시야의 오심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에서 연유하는 것이며, 이제 해처럼 오셔서 어둠과 그늘에 앉아 있는 백성에게 빛을 비추고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절 첫주일에 가져야 할 우리들의 마음자세는 그 무엇보다도 '아드벤투스'로서의 미래적 삶의 자세, 곧 기다릴줄 알고 앙모할줄 아는 삶, 미래시간을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로서 받아드리는 자세의 회복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획하고, 예견하면서, 만들어가고, 쟁취해가는 것으로서 '희망의 미래'를 보다 책임적으로 신중히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특히 신앙적인 삶의 자세에서, 미래는 '이리 오고있는 선물같은 것'이라는 것, 삶이란 젱위적인 성과물만이 아니라, 더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허락과 준비와 선물로서만 가능한 신비로운 것이라는 께달음이 필요한 신앙의 계젏이 바로 재림절기 입니다. 주님께서 어느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 경고하시기를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있지 않다"고 하시었습니다.어리석은 부자가 넓은 논과 밭에서 차고넘치는 소출을 낸 후에, 더 큰 창고를 짓고 여러해 쓸 물건을 쌓아두고 스스로 자기 영혼에게 말하기를 "영혼아 여러해 동안 쓸 물건을 쌓아두었으니, 넌 맘 놓고 먹고 마시며 즐기라"라고 하였지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밤에 하나님이 너의 영혼을 도로찾으면 네 장만한 재산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시고,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쌍아두면서 하나님에게 대하여서는 인색한 사람의 문제점이 어디있는가를 비유로 말씀하신적 있습니다.

현대인간은 대부분 철저하게 '소유적 존재'가 되었고, 미래마져도 온전히 내가 쟁취해가고 달려나아가는 자동차경주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자동차핸들을 잡고 달려나아가는 운전자는 경쟁차들에 지지않으려고 앞만향해 달려나가느라고,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나무와 산천의 색갈이 달라져도 감동이 없습니다. 어린 애기들이 태어나고 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임종을 맞이하는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적같은 놀라운 일들이 생명의 신비로 가득찬 세계로서 보이기를 그치고, 이윤을 추구하고 생산성을 증대시켜가는 거대한 공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나 과정으로만 보이게 됨니다. 황금을 너무나 좋아한 남어지, 자기가 손대는 것마다 모두 황금으로 변화되는 능력받기를 원했던 임금이 마침네 사랑하는 외동딸을 만지는 순간 그 외동딸이 황금으로 변해버렸다는 동화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치,교육, 예술, 스포츠, 모든 문화활동, 심지어 종교마져도 손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해버리는 저주를 받은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맘몬 곧 물신(物神)이 철저하게 현대사회인의 심령을 사로잡고 사회구조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국제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자기재산 증식의 호기로 삼고 사치와 낭비를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 계급상승, 신분상승을 이루어서 자기들도 "내 영혼아 여러해동안 쓸 문건을 쌓아놓게 되었으니, 내 영혼아 맘 놓고 먹고 마시며 삶을 즐기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에 이르려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나가자는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대림절에 받는 축복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도움을 힘입어 이 세기말적 소유경쟁에서 남보다 한발 앞서가자는데 있지 않습니다.그리스도인들이 앙망하는 대림절의 축복은 기다릴 주 아는 미래로서의 '아드벤투스로서의 삶'의 신비로움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데 진정한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들어가 살집을 장만하는 의식주 해결문제가 물론 중요한 것이고, 또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천부께서도 아십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위해 하나밖에, 한번 밖에 없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고, 생명을 위해 그것들의 존재가 의미있는 것임을 주께서 일깨우심니다. 생명은 더 큰 하나님의 아름다움, 선하신 뜻, 정의롭고 사랑할만하며 자유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정향될 때, 가장 행복한 것임을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인류가 맘몬숭배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아라'를 앙모하면서 살아간다면, 모든 기독자들은 세계교회협의회가 말하는바대로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가능한 사회"(Just,Partipatory,and Sustainable Society)의 실현을 위해 우리는 헌신하는 자세로서 살아가야 함니다. 대림절이란 바로 잃어버린 그 여백의 마음, 우리 삶을 경재가치로서만 보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 보는 시각교정을 통하여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가능한 사회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정열을 다시 맘 속에 다시 일깨우기를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계절이기도 한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대림절의 의미는 "빛이 있으라"고 저 태초의 혼돈적 어둠을 향해 말씀하시던 하나님께서, 우리맘 속에 빛을 비춰주시는 신앙의 계절 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대림절에 우리가 정말 기다리고 간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맘 속을 비추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는 진리의 빛을 비춰주십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셨던 그리스도 예수님의 얼굴에 문득 나타나 보이셨던 하나님의 영광, 세상사람들이 눈으로는 볼라야 볼 수 없는 '고난 속에 있는 영광'을 볼수 있는 눈을 한번더 열어주시기를 간구하며 겸손히 기다리는 신앙의 계절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근대문명 이후로, 분명히 우리의 외부세계는 무척 밝아졌습니다. 그런데 매우 역설스럽게도, 우리를 둘러싼 주위의 빛들이 더 휘황찬란하게 밝아져가는데도, 우리는 어쩐지 점점 속이 어두워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피마자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심지를 북돋우시면서 싻바느질하시던 우리 할머니시대, 석유기름등잔이나 호롱불 아래서 공부하고 책을 일던 가난한 시절의 사람들의 맘이 우리들보다 더 어두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밤이 되면 온 동네가 더두워 졌어도 도리혀 총총히 어둠을 뚥고 빛나는 저 우주공간멀리를 내어다보고 은하수 별들의 흐름을 보면서, 농부들은 밤의 논둑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비록 물질적으론 훨씬 현대인들보다 가난했을 지라도 마음속을 비추는 '본래적 빛', 이성의 빛, 양심의 빛, 영적인 빛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밤 우리가 명동거리를 한번 지나가 보면, 수백촉 형광등이 불야성을 이루고, 가게마다 손닌을 한명이라도 더 끌려는 음악소리가 소음으로 변하면서 귀청을 울리지만, 거기엔 참다운 빛도 없고 음악도 없고 오로지 물신의 유혹만이 있습니다.

여러분, 빛에는 여러가지 차원이 다른 빛들이 있다는것을 아심니까? 창세기를 보면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신 후에 궁창을 비추는 발광체들 곧 우리가 말하는 물리적 빛을 지으시기 전에,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하고 빛을 맨처음 지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빛은 해와 달과 별들이 우리 눈에서 다 꺼져 버린 뒤에도 남아 우리를 비취는 더 근원적인 빛인 것입니다. 우리 이땅의 목숨이 다 끝나 죽음을 마지할 때, 우리 앞에 홀연히 비춰나오며 우리를 둘러싸는 빛이 있을 것인데 그 빛은 물리적 빛이 아님니다. 사도 마을이 저 다메섹 도상에서 본 빛도 그런 빛이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얼굴이 해처럼 빛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빛 때문인 것입니다. 이 빛은 화폐가 지닌 물질구매력이 타면서 발산하는 그런 경제에너지의 빛이 아님니다. 바울사도는 오늘 고린도 후서 본문 말씀속에서 이 빛, 이 엄청난 능력, 이 신비의 빛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빛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질그릇 속에 담겨져 있는 이 빛은,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역경, 환난, 그리고 박해 속에서 더욱더 빛나는 빛이요, 체험되는 빛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석류껍질이 빠게어 지면서 진주처럼 빛나는 석류 속알이 드러나 보이듯이 이 생명의 참빛은 '고난과 환난' 속에서 지지 않고 우뚝 서서 도리혀 하늘의 참 빛과 삶의 근원적 아드벤투스로서의 미래적 삶을 대망하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 보여지는 빛입니다. 돌산에서 갓 케어낸 박옥과 보석은 다듬는 기계에 깍이우고 표면이 벗겨지는 아픔을 겪고서라야 그 본래적인 보석으로서의 빛을 발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한줌의 진흙덩어리가 도공의 손에 들려 형태를 입은후에 지피는 장작나무 불 속에서 수천도 열과 압력을 받은 후에라야 청자 백자로서 변화되는 이치와도 통한다 하겠습니다. 대림절이란, 우리들의 심령이 이 세상의 욕망과 탐심과 근심우수사려에서 맘을 돌이켜 맘이 가난해져야 할 계절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형성해가는 미래못지않게 더 중요한 우리에게로 오고있는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삶속에 현존하는 생명의 신비앞에 경외의 맘과 감사의 맘을 회복해야 할 계절입니다. 무엇보다도, 내 심령속의 어두움을 쫒아내고 다시한번 더 주님이 밝혀주시는 진리와 생명의 등불을 되찾아 불빛을 더 밝게 자기를 성찰하는 계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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