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신을 내세운 경북 포항 한동대학교(총장 장순흥)가 연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경향신문>, <중앙일보>, JTBC 등 보도에 따르면 학내 학술동아리 '들꽃'이 페미니즘 강연을 열었다는 이유로 학교 측이 해당 학생들 징계를 추진하는가 하면, 학생들의 성적 지향마저 문제 삼고 있다는 사실이 불거졌다.
이에 앞서 한동대는 국제법률대학원(HILS) 김대옥 조교수(목사)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학교 측은 재임용 거부 사유로 교육 분야에서 재임용 최저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을 들었다. 또 한동대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가르침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혼란을 줬다는 이유를 들기도 했다. 이 학교 대외협력실 측도 김 목사 재임용 거부가 교원인사위원회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고 알려왔다.
그러나 김대옥 목사 본인과 김 목사 징계가 부당하다고 여기는 한동대 재학생, 동문들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동대 동문은 기자에게 "학교 측이 지난 2009년부터 김 목사의 성향을 문제 삼아 인사 불이익을 줬다. 이번 일은 그 일의 연장선상"이라고 알려왔다.
이에 기자는 당사자인 김대옥 목사 입장을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아래는 김 목사와 9일 오전 전화 통화를 통해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 우선 사실확인부터 하고자 한다. 한동대의 한 동문이 학교 측의 인사불이익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정보를 줬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 달라.
"2009년 5월 학부에서 설교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난 교목실에 재직중이었고, 매월 1회 설교를 맡아왔다. 그 당시 학내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 설치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학생들 일부는 분향소가 필요하다며 설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총학생회는 성명을 통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분의 관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맞서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고려해 이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자고 마음 먹었다. 학생들은 치열하게 고민하는데, 설교자가 침묵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온 국민이 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고통스러워 할 때 성서를 통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신학, 건강하지 않은 신학적 견해는 우리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도 오해를 불러올 수 있으리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래서 성서가 말하는 죽음, 구원에 대한 이해의 취지로 설교했다. 그런데 교수 한 명이 내 설교를 듣고 일단 교회적으로 불편한 내용이고, 고 노 전 대통령 서거 기간이기에 정치적으로 편향성이 있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후 지금과 상당히 유사한 흐름이 생겨났다. 학부모들이 학교 당국자에게 전화로 항의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는 분이 한동대에 있을 수 있냐는 항의였다."
- 그때 인사불이익을 받은건가?
"당시 학교 측은 이 사건을 심각하게 다뤘지만, 이후는 잠잠했다. 다만 나에 대해 '불온하다'는 식의 낙인이 형성됐다. 2014년까지는 무난히 지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2014년 총장이 바뀌면서 전임 총장이 나를 국제법률대학원으로 전보조치했다. 표면상으로는 국제법률대학원에 목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때 강의나 설교에서 배제됐다. 이곳은 학교이기에 교목이어도 교원 신분으로 강의를 한다. 교목들은 '성서의 이해', '기독교 이해' 같은 기독교 신앙관련 강의를 한다. 전보조치되면서 강의와 설교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당시 교무처장으로부터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전보조치했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 이와 관련, 곽아무개 교무처장에게 관련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으나 해외 체류 중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기독교 보수성 지키려다 학문의 자유 훼손
- 한동대는 유난히 기독교 정신을 강조한다. 이런 분위기가 인사불이익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
"굳이 정치적 이념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한국 기독교(개신교)는 전반적으로 보수적 정치성향이 강하다. 한동대가 특정 교단의 신학교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축소판이라고 보면 무리는 없다.
공교롭게도 나에 대한 낙인이 형성된 시점이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집권기간과 겹친다. 난 설교자로서 현실사회에 대한 성서적 비판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정책이나, 우리를 둘러싼 삶의 환경에 나름대로 비판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설교자의 직무유기라고 본다. 그래서 2009년 이후 설교 기회만 주어지면 이 같은 비판을 담아내려 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나에 대해 각인된 인상을 불식시키지 못한 채 누적돼 왔다.
그러나 분명한건, 기독교 대학의 설교자로서 나의 소신이 잘못됐다거나, 그렇게 해선 안된다는 시각은 용납할 수 없다. 어떤 분들에겐 내 소신이 불편할 수 있다. 반면 다른 분들에겐 매우 좋은 신앙적 통찰을 제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정한 부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설교 강단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 많은 언론에서 목사님의 재임용 거부와 한동대의 학생 징계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논조가 학교 측이 성소수자 입장을 문제 삼아 재임용을 거부했다는 식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난 성소수자 관련해서 설교한 적이 없다. 학교 측이 오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일각에선 성소수자에 찬성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불거지는데, 이건 내 입장이 아니다.
한동대에서는 지난해 5월 동성애, 동성혼과 관련, '성경적 진리와 윤리관에 반한다고 믿는다'는 입장을 낸 적이 있었다. 난 '신학자로서 공동체 입장은 존중한다. 허나 동성애가 곧 죄라는 신학적 판단은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학교 측에 밝혔다. 아마 학교 측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 게 큰 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들꽃'과 관련해서도 말해야겠다. 들꽃은 학생 자치모임으로서 지도교수가 없다. 이들은 좋은 취지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공부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공부한 내용을 실천에 옮겼다. 'WeWeek'란 이름의 강연 주간도 마련해 주제에 맞는 강사를 초빙해 학생들에게 강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렇다 할 재정도 없는데 말이다. 또 청소 노동자와 연대해서 노조 결성을 돕기도 했다.
난 기독교 대학 학생들이라면 이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동의했다. 들꽃도 기독교 공동체라는 취지하에 나를 설교에 초청해 2015년 봄과 가을, 그리고 2016년 봄 여는 예배에서 설교했다.
그런데 들꽃 학생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학교 측이 나를 들꽃의 배후로 지목했다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분노를 금치 못했다. 학생들이 선한 의도로 활동하는데, 마치 배후의 사주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폄하했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의 선한 의지가 오해 받는 상황이 불편해 관계를 중단하자고 들꽃에 제안했다.
그러다 들꽃의 페미니즘 강연이 논란을 일으키니 재차 들꽃의 지도교수가 나라는 식의 말들이 퍼지기 시작한거다. 어떤 학생은 나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징계를 요구했고, 이게 외부로 알려지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퍼지고, 학교에 항의가 들어왔다. 2009년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 학교 측은 재임용 거부가 정당하다는 식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모든 절차가 생략됐다. 학교 측은 이의신청 같은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 학교 측은 간단하게 교육 분야에서 재임용 최저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한다. 전혀 사실과 다르다. 난 이미 충분한 점수를 확보해 학교에 제출했다. 나 같은 계약 교원들은 법적으로 업적 최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곧장 퇴출이다. 학교 측은 평가 자체를 생략했다.
학교 측은 또 '한동대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가르침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혼란을 줬다'는 모호한 이유를 붙였다. 이렇게까지 한 건 첫 번째 이유가 거짓이라는 말로 밖엔 들리지 않는다."
- 향후 어떻게 대응해 나갈 계획인가?
"난 이번 일을 나 개인에 국한된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난 한동대를 사랑한다. 한동대가 이번 일을 자신들의 역사로 기록하면, 이제 어느 누가 소신껏 강단에서 설교하고, 학문적 사유를 학생들에게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나?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누군가의 소신이 재임용 탈락 사유가 되고, 인사에 있어 전가의 보도가 되면 학문의 자유는 죽는다. 한동대는 자신을 지키겠다고 날 잘라낸 거지만, 이건 오히려 한동대를 망가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역사는 쓰여지면 안된다.
일단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 청구를 준비 중이다. 만에 하나 청구가 받아들여져도 강의엔 배제할 거다. 그러나 이번 일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이라고 본다. 앞서도 말했지만 누가 소신껏 학문 활동하려 하겠나? 내 사건이 학교가 학교다워질 수 있는 촉매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법적 절차를 밟아 투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