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일이 있어 늦은 밤 귀가했다. 미쳐 챙기지 못한 소식들을 보기 위해 소셜 미디어 타임라인을 훑어봤다. 그랬더니 타임라인이 발칵 뒤집혀 있다. 28일 오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알린 서지현 검사 인터뷰가 그 진원지였다. 무슨 내용이기에 이토록 들끓어 오를까 하는 생각에 얼른 인터뷰를 챙겨봤다. 그 내용은 실로 경악스러웠다.
그런데 서 검사의 인터뷰 내용을 듣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삼일교회 전 담임목사였던 전병욱씨의 성추행 사건을 떠올리게 됐다. 서 검사는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고위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놀라운 건 그 자리에 법무부 장관까지 배석해 있음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서 검사의 증언 중 일부를 아래 인용한다.
"법무부 장관님이 앉아계셨고 바로 그 옆자리에 안 모 검사가 앉아 있었고, 제가 바로 그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주위에 검사들도 많았고 또 바로 옆에 법무부 장관까지 있는 상황이라서 저는 몸을 피하면서 그 손을 피하려고 노력을 하였지 제가 그 자리에서 대놓고 항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전씨가 삼일교회에서 시무하던 당시 그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한 여성도의 증언도 이와 비슷했다. 이 여성도는 CBS 시사 프로그램 '크리스천 NOW'에 출연해, "주변에 부목사들이 곁에 있었음에도 아랑곳 없이 성추행을 가했으며 아무도 제지하지 않다"는 취지로 자신의 피해사실을 털어 놓았다.
또 검찰 수뇌부가 서 검사의 성추행 피해사실을 덮고, 그를 '꽃뱀'으로 몰았듯, 전씨의 징계권을 가진 예장합동 평양노회도 사건을 '부적절한 대화' 정도로 축소해 종결시켰다. 서 검사와 마찬가지로 전씨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도들 역시 '꽃뱀'으로 몰렸다.
서 검사 성추행 vs 전씨 성추행, 평행이론
서 검사의 증언을 들으면서 전씨 사건이 떠올라 참으로 힘들었다. 그런데 서 검사는 증언 말미에 결정타를 날렸다. 바로 이 대목이다.
"사실은 이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마는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를 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가해자가 다닌다는 교회는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유명 대형교회다. '일본 식민지배가 신의 뜻'이라고 해 온 국민을 경악케 했던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이 교회 장로다. 마침 서 검사의 증언이 방송되면서 가해자가 간증한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와 빠르게 확산 중이다. 2017년 10월29일 오전 예배에서 가해자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성경 말씀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지만 찬송과 기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성경말씀을 접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저 혼자 힘으로 성취했다고 생각한 제 교만에 대해 회개하며 저희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가해자인 안 아무개 검사가 성경말씀을 접하며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을 느꼈듯 전병욱씨도 예수만 바라보겠다며 새교회를 개척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한다"는 서 검사의 증언은 송곳처럼 심장에 꽂혔다.
한 사람의 영혼에 깊은 생채기를 냈음에도 하나님의 사랑 운운하는 저들에게 과연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존재이고, 기독교 신앙은 또 어떤 의미일까?
그간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가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게끔 많은 관심을 갖고 현장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성추행 가해자들이 교회 안팎에서 활개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예수는 지금 한국 사회에 무슨 의미를 갖는지 도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