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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만] 당신은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나이다 (1)

삶은 위한 신학- 신학을 위한 삶 / 2009년 5월 방한 강연

다음은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방한 중 서울신대, 한신대, 연세대 등에서 공개 강연한 발제문이다. 몰트만 박사의 허락을 받아 강의 내용 전문을 싣는다. 

▲ 튀빙엔 대학 위르겐 몰트만 교수

이 강연을 통해서 나는 내 삶의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풀고, 나의 신학은 삶의 여정의 빛에서 풀어보려 한다. 그것은 내 삶에서 신학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또 내가 왜 내 모든 삶을 신학에 바쳤는지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은 청소년 시절 내 생명을 구했다. 그 희망은 지금까지도 나의 삶을 신령한 영의 에너지로 채웠다. 그 희망은 나로 하여금 매일 아침, 대림절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오심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나님의 미래"는 저를 항상 매료시킨다. 그것은 그 미래가 나에게는 예나지금이나 자유의 "넓은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오셨다. 그리스도는 지금 여기 계신다. 그리스도는 오실 것이다. 나에게 이 말은 이런 뜻이다. 즉 너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너는 자유롭다. 1988년 4월 4일 살해당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묘비에 새겨진 찬송시를 빌어 말하자면 "free at last, at last free"이다.

종말 - 시작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학적 탐색이 시작된 것은 1943년 내 고향 함부르크가 끔찍한 종말을 맞았을 때다. 나는 말하자면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아남은 사람"인 셈이다.

이 말은 결코 시적이고 종교적인 표현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의 표현이다. 지금도 그 때에 대한 기억이 엄습하면 몸이 떨리고 두렵다. 나는 함부르크에서 교사 생활을 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세속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종교와 신학은 나와는 아주 멀리 떨어진 세계였다. 나는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려고 했다. 청소년기 나의 영웅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막스 플랑크였다. 내 나이 열여섯이 되었을 때 베르터 하이젠베르크의 서문이 붙은 루이 드 브로이의 저서 <빛과 물결>을 읽고 있었다. 그 때 우리 학급 모두는 함부르크 시내에 있는 고사포 중대로 가야했다. 1943년 때 그 공습의 암호명이 “고모라 작전”이었다. 우리가 있던 곳에 떨어진 폭탄으로 바로 내 옆에 있던 친구는 사지가 다 찢겨나가 죽었는데 놀랍게도 나는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던 그 날 밤 나는 제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었다. 나의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하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스코틀랜드와 영국에서 3년 간 전쟁포로 신세로 있으면서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했듯이 나도 매일 밤 하나님과 씨름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두운 측면과의 씨름이었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얼굴과의 씨름, 우리가 전쟁과 포로생활의 처절함을 통해 체험한 하나님의 No(아니!)와의 씨름이었다. 우리는 가까스로 전쟁의 죽음을 벗어났다. 하지만 생존자가 한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은 수백 명이었다. 지옥은 탈출했지만 우리 앞에는 철조망이 놓여있었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괴테와 실러의 아름다운 독일 시, 독일 철학자들의 높은 이상을 흠모했다. 하지만 수용소의 처참함 속에서 그런 것들은 그 빛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내적인 세계도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나는 무감동과 무감각의 철갑 보호막을 치고 그 뒤에 상처받은 나의 마음을 숨겼습니다. 그것은 외부의 포로상태에 뒤이은 내적인 포로상태, 영혼의 포로상태였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무심해지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아무런 기쁨도 아무런 고통도 못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육체는 살아있는 것 같지만 이미 죽어 굳어버린 생명이다.

이러한 종말이 새로운 시작으로 전환된 것은 세 가지를 통해서였다. 첫째는 활짝 피어난 벚 나무, 둘째는 스코틀랜드 노동자들과 그네들 가정이 베풀어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친절함, 마지막으로는 성서였다.

1945년 5월 우리는 벨기에의 그 처참한 수용소에서 어떤 차 한 대를 밀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재미도 없이 차를 밀다가 갑자기 나는 너무나 아름답게 꽃을 피운 벚나무 앞에 서게 되었다. 그 풍성한 생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의식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내 안에서 다시금 생명의 불꽃이 이는 것을 느꼈다.

스코틀랜드에서 우리는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함께 도로건설 작업을 했다. 그 사람들은 우리의 웃옷 뒤쪽에 새겨진 번호를 부르지 않고 우리의 이름을 불렀고, 과거의 원수였던 우리를 허물없는 친절함으로 대했고 인간적인 연대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나를 무척 부끄럽게 했다. 딱딱하게 굳은 석상과 다름없었던 우리는 그 사람들 덕분에 다시 웃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어느 영국인 군목한테 성경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성경을 받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저녁마다 구약성서의 탄식 시를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편 39편을 읽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좋은 말도 하지 않았더니 걱정 근심만 더욱더 깊어갔다.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주님,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내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 또한 나의 모든 조상처럼 떠돌면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손과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온 영혼으로 이 시편을 읽었다. 나중에 나는 또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예수께서 운명하시면서 외치신 말씀을 읽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때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분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분이다. 그리고 그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더니 나도 예수를, 하나님에게 시험을 당하는 그 예수를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스도- 그는 낯선 곳에서 만난 친구였다.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친구였다. 그리스도- 그는 나를 그가 걷고 있던 부활과 생명의 길로 인도했다. 나는 생기를 되찾았다. 풍성한 생명에 대한 큰 희망이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다시 여러 소리를 듣고, 여러 색깔을 보고,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열망하는 것처럼, 그 때 내가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것은, 그 때 바로 거기서 영혼의 어두운 구멍에 있는 나를 그리스도께서 발견하셨다는 사실이다. 그 후에 나는 거듭거듭 그리스도와 그 분의 나라를 선택해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린 그리스도의 버림받음,, 즉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음이 나에게 하나님의 현존을 보여주었다. 고향 함부르크가 화염에 휩싸였을 때 하나님이 어디에 계셨는지를 보여주었다/ 나에게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오늘날까지도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이 체험에 완전히 매료된 나는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기로 작정했다. 이런 생각을 쓸데 없는 것으로 간주하셨던 나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스코틀랜드의 노동수용소에 있을 때 영국에 있는 어떤 수용소 얘기를 들었다. 신학 공부를 할 수 있는 특이한 수용소였다. 나는 그 수용소에 갈 것을 신청했고 1946년 한 영국인 군인의 호송을 받아 노팅엄 근처 포틀랜드 공작의 아름다운 정원 안에 있는 노튼 캠프(Norton Camp)로 가게 되었다.

이곳은 영국 YMCA에서 세운 곳으로 영국군이 관리하고 유지하는 수용소였다. 그곳에서는 전후 독일의 목사 양성을 위해서 포로 교수들이 포로 대학생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히브리어를 배우고, 신학 강의를 듣고, 신학 책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그 책의 내용을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목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목사가 되는지 조차도 몰랐다/ 그 당시 나에게는 교회가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진리를 찾아 나선 상태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지 않으신다면 나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내 인생의 부활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없는 어두운 시절이 지나간 뒤 바로 그 수용소에서 내 인생에 태양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거기서 하나님의 모든 NO(아니!)에 숨어있는 하나님 YES(그래!)를 발견했다. 1948년 나는,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밤새 씨름을 한 뒤의 야곱처럼, “절뚝거리며” 포로생활에 되돌아왔으며 그 야곱처럼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숨겨진 얼굴” 아래서 그렇게 오랜 시간 고생한 끝에 마침내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세 가지 경험은 이후 나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1. 모든 종말에는 새로운 시작이 숨겨져 있다. 네가 그 시작을 찾아 나서면 그 시작이 너를 찾을 것이다.


2. 짓누르는 듯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의 용기를 갖는다면, 우리를 묶고 있는 사슬들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통은 체념보다 낫다. 고통은 생명의 징표지만 체념은 죽음의 징표기 때문이다.

3. 내가 예수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나에게 매일 이렇게 말한다. “그가 너를 두려움의 심연에서 이끌어 내사 곤궁이 없는 넓은 곳으로 옮기신다”(욥36:16) 나는 하나님을 억압이나 소외로 경험하지 않고, 자유의 넓은 공간으로 경험했다. 우리는 그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호흡하고 또 일어설 수 있다. 이것으로 나의 개인적인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하나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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