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기후변화의 현실과 교회의 대응(5)

장윤재 교수(한국교회환경연구소장)

신-인간-자연에 대한 새 인식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부 교수, 한국교회환경연구소장)

우리의 세계는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물리적으로 한계를 가진 세계로 다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발맞춰 인간중심적인 창조 이해에서 벗어나 창조 세계의 통전성 안에서 인간의 창조성과 자유를 다시 인식해야 한다.

데일리도 깨달았듯이, 경제 성장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기술적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가진 세계관의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논쟁이다. 생태적 대안 경제는 결코 기술적 해결책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해결책이다. 1967년 “생태적 위기의 역사적 뿌리”라는 한 편의 작은 논문에서 기독교의 ‘지독한 인간중심주의’가 오늘날 생태 파괴의 근본원인이라고 지목하여 현대 기독교 신학의 대각성을 촉구한 린 화이트(Lynn White, Jr.) 박사도 현재의 생태적 위기가 과학과 기술의 힘에 의해서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이 위기에 대한 본질적 대책은 다름 아닌 종교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꿔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생산자 혹은 소비자라고 부르지만, 열역학 법칙들에 의하면 인간은 창조자가 아니라 오히려 ‘폐기물의 생산자’에 불과하다. 인간이 소유한 기술이 인간을 피조물에서 창조자의 반열에 올려놓을 것이라는 믿음은 근대가 만든 허상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가진 창조적인 능력을 옹호하는 방법으로 성장에 탐닉하는 습관을 버려야 하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파생된’ 창조적 능력이 마치 자생적이고 자율적이며 무한한 것인 양 생각하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창조성을 부여 받았으나 여전히 한계성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이라는 겸허한 인간학적 이해로부터 변화는 시작되어야 한다. 인간은 “창조성을 부여 받았으나 한계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실 4백 년 된 기계론적 세계관이 문제다.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 로크, 스미스가 퍼뜨린 이 기계론적 세계관의 특징은 진보라는 개념이다. 진보란 ‘덜 질서 있는’ 자연 세계가 인간에 의해 ‘더 질서 있는’ 문명으로 나아간다는 개념이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물질적 부가 축적될수록 세계는 더욱 질서 있는 세계가 된다는 것이며, 과학과 기술은 이를 실천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모든 과학의 제1법칙”이라고 말한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지구상이건 우주건 그 어디서든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법칙에 의하면 역사가 진보의 과정이라는 가설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이 질서 있는 세계를 창조할 것이라는 가설도 무너진다.

이렇듯 오늘날 생태 위기의 이면에는 잘못된 인간학적, 신학적 전제가 숨어 있다. 인간은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며 이런 인간의 욕망은 만족을 모른다는 인간학적 전제와, 이러한 ‘무한한 욕망이라는 원죄’는 인간의 기술에 의해 ‘속죄’될 수 있고, 신의 명령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명령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하라는 것이라는 신학적 전제가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데일리가 지적하듯이, 실재의 세계에 사는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경제 인간’이 아니며, 인간의 ‘상대적 필요’는 만족시킬 수 없어도 ‘절대적 필요’는 만족시킬 수 있다. 우리에게는 ‘신학적 삼위일체’라 불리는 신-인간-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새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신학이 중요하다. 당장 현장에 뛰어드는 실천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의 신학이 바뀌어야 한다. 신-인간-자연에 대한 세계관이 총체적으로 변해야 한다. 세상을 고치려면 먼저 이 세상이 어떻게 짜여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문제가 바로 거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샐리 맥페이그는 기후변화를 정면으로 다룬 그의 최근작에서 지구 온난화를 신학적 의제로 받아들인다. 인간 종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멸종 위기 앞에서 그는 인간 사상의 가장 근원을 다루는 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잘못된 인습적 의미에 지구와 생명체들에 대한 파괴가 계속되는 것이다”라고 그는 잘라 말한다. 잘못된 신간과 인간관이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묵인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신간과 인간관을 비판하고 해체하여 재구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맥페이그에 따르면, 고전적 신학의 영혼 중심적이고 저 세상적인 구원관은 기후변화의 위기 앞에서 인간을 방관자로 만들었다. 맥페이그는 오늘날 지구 시장을 다스리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고전적인 신학의 구원관과 잘 어울리며 현재의 기후변화 위기를 촉진한다고 비판한다. 고전적 신학은 기본적으로 이원론적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영/육, 하나님/세계, 정신/육체 등 서로 대립된다고 생각하는 두 개의 가치를 이분법적으로 나눈다. 다른 한 쪽이 다른 한 쪽보다 더 우월하다고 위계를 짓는 이러한 이원론적인 위계질서는 인간이 하나님과 세계를 바라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원론적 위계질서 안에서 하나님은 저 세상의 바깥에 초월해 계시는 위계질서 맨 위의 최고 존재다. 하나님은 인간의 여혼 구원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또한 세상은 인간이 잠시 머물다가는 호텔과 같은 곳이기 때문에 인간은 살면서 모든 자원을 내키는 대로 착취하고 과다하게 이용해도 된다. 이러한 고전적 신학관은 고전주의 경제학에서 해석한 인간, 즉 인간은 욕망을 지닌 개인적 존재라고 보는 인간관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생태계의 파괴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맥페이그는 우리가 보다 공동체적인 인간이해, 즉 인간을 ‘지구에 속한 존재’로 보는 인간관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인간만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우주가 자신을 인식한 ‘우주의 자의식’이 바로 우리 인간이긴 하지만 인간은 지구 ‘위’에 혹은 지구 ‘밖’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아니다. 우리는 지구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물, 식량, 토지, 그리고 기후 등에 철저히 의존해 있다. 우리는 지구 ‘안’에 다른 생명과 함께, 그 생명들 덕분에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 맥페이그는 대단히 중요한 신학적 선언을 한다. 그는, “하나님이 이 세계 속에 성육신해 계신다”고 말한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신-인간-자연 모델을 뒤엎는 대단히 과감한 제안이다.

이정배 교수가 지적하듯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한 몸으로 육화되었기보다는 온 세계 속에 육화되었다는 것이 바로 구성신학자인 맥페이그의 출발점이다. 전통적 창조론이 이원론적 위계적 구조 하에서 피조물을 배제시켰던 것에 비해, 성육신에 토대를 둔 창조 이해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주 안에 계시고, 인간과 삼라만상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표시이며, 따라서 세계의 고통은 곧 하나님 자신의 고통과 상처다. 맥페이그는 하나님이 게시지 않는 곳이 없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에 의거하여 기독교 신학의 창조론과 성육신 사상이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님을 논증한다. 한마디로 맥페이그에게 이 세계는 ‘하나님의 몸’이다. 하나님과 세계는 동일하지 않으나 그는 세계를 하나님의 몸의 육화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모델의 변화는 우리의 삶과 신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만약 우리가 이 세계를 하나님의 몸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천상이나 사후에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 이 땅 위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이 우주와 세계 안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의 실천의 문제와 직결된다. 즉 굶주린 이들을 먹이고 병든 자들을 치유하며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바로 세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 세계(지구) 안에 현존하기에 지구를 돌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맥페이그는 신앙을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삶 자체를 긍정하는 일”로 보았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실 자체에 대한 놀라움과 감사를 “초월을 넌지시 비추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몸인 세상에 대한 찬양과 연민 그리고 감사 속에서 초월의 흔적을 보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인간의 생존공간인 지구를 하나님 현존의 자리로 인식하는 것은 기후변화의 시대 인류의 문명사적 전환을 제안할 수 있는 종교적 근거가 된다. 세상을 기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몸으로 다시 볼 수 있을 때 우리를 지배하던 인습과 교리 그리고 거기에 기생한 성장 이데올로기는 gal을 잃고 우리는 과감히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영적인 자유와 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실 기후변화가 요구하는 신학적 성찰의 자원은 풍부하다. 기후변화가 요구하는 신학적 성찰의 지평을 우리는 켈트영성과 중세 기독교의 신비주의로도 확장할 수 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의 품에 기대어 사랑받던 제자, 그래서 ‘하나님의 심장박동 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요한의 전통에서 나온 켈트 영성에 우리는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본 펠라기우스에, 가장 진정하게 인간적인 것이 가장 신적인 것이라고 말한 존 스코트에, 그리고 하나님은 물질적 영역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창조의 물질적 영역 가운데서 찾아질 수 있다고 말한 조지 마크라우드 등에게 흘러나온 신학적 자원을 우리는 복권시킬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늘과 태양, 달과 별들의 빛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말하고, 육체적인 것을 통해 영적인 것을 보며, 모든 생명 가운데서 생명으로써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숨결보다 더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는 분”을 만날 수 있을 때 기독교의 신앙은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삶 자체를 긍정하는 일이, 살아 있는 사실 자체에 대한 놀라움과 감사가 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존공간인 지구를 하나님의 현존의 자리로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신비주의가 되살아나야 한다. 신비주의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세계의 잘못된 그 어떤 것들보다 더 깊숙이 있는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도로테 죌레(Dorothee Soelle)가 말하듯이 진정한 신비주의는 일상성의 문제를 진지하게 취급하며, 저항적 정신을 내포하고, 이기적 자아를 벗어나 다른 것들과의 관계성을 마음에 품고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신비주의다. 그것은 끊임없이 세계 안으로 들어가며, 그 안에서 정의를 추구하고 또한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어우러짐이며 춤이다. 이러한 신비주의 영성에 의하면 우리가 ‘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것’을 깨닫는 것에서 비롯된다. ‘내 것’이라고 소유한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기억하는 것,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그리스도와 하나를 이루는 것, 그리고 소유보다 존재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 바로 이것이 세상과 자신의 몸을 긍정하게 하고 신비와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게 하는 기독교를 만들 수 있다.
 

-기후변화의 현실과 교회의 대응(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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