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은 기독교 성지 중 가장 중요한 곳이다. 베들레헴은 예수가 태어난 곳이고 예루살렘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있었던 곳으로 기독교의 시작과 직접 관련돼 있다. 해마다 수많은 기독교인이 성지 순례를 위해 이 도시들을 찾는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간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에 간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베들레헴은 물론 예수의 죽음 및 부활과 관련된 장소들이 있는 동예루살렘이 사실은 팔레스타인 땅인데도 말이다.
이는 왜곡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기독교의 뿌리이자 성지가 있는 곳으로, 반면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기독교 성지를 위협하는 이슬람의 땅이라 인식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대부분이 아랍계 이슬람 신자인 무슬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기독교가 시작된 곳으로 많은 기독교 성지와 오래된 교회들이 그곳에 있다. 당연히 기독교인들도 있다.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소수 기독교인에 대한 다수 무슬림의 핍박이나 두 종교 사이 갈등은 없다. 오히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점령과 억압 하에서 함께 고통받으면서 강한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기독교 인구는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억압과 핍박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그곳의 기독교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모두 해소된다.
교회협의회 대표단 11명은 4월 23-27일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 팔레스타인 교회를 만나 직접 팔레스타인이 직면한 문제를 듣고 협력할 방안을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안내하는 성지 순례를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성지 순례의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팔레스타인에 있는 가장 중요한 성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베들레헴과 동예루살렘이다. 대표단이 일정 내내 묵었던 베들레헴에는 목자들이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한 들판이 있고 예수가 탄생했던 곳에 세워진 예수탄생교회도 있다. 예수가 탄생한 곳이어서인지 팔레스타인의 다른 곳보다 베들레헴에는 기독교인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10% 정도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 전체의 기독교 인구는 1% 미만이다.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는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인정한 직후인 330년대에 지어졌고 후에 확장과 보수가 이어졌음에도 여전히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2차 인티파다 당시인 2002년에는 39일 동안 이스라엘군에 의해 포위되기도 했었다.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이 베들레헴을 포위 공격한 이스라엘군에 쫓겨 예수탄생교회로 피신했고 교회 안에는 수도사들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함께 있었다. 수도사들이 부인했지만 이스라엘군은 무장대원들을 소탕하기 위해 그들을 인질로 취급했다. 39일 동안의 포위 후 무장대원들은 이스라엘에 항복했고 모두 유럽과 가자지구로 추방됐다. 대부분의 성지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예수 탄생 이야기를 묵상하고 아름다운 교회만 둘러보지만 그 이면에는 베들레헴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예루살렘의 올드시티(Old City) 또한 모두가 방문하는 곳이다. 이스라엘에 속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올드시티는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땅인 동예루살렘에 속해 있다. 이곳은 가장 중요한 성지순례지 중 하나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골고다 언덕과 무덤 자리, 그리고 그 위에 4세기에 세워진 성묘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가 채찍을 맞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십자가를 메고 갔던 길도 올드시티 안에 있다. 이곳에는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의 성지가 공존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예루살렘이 52번의 침략을 받았고 44번의 점령과 재점령을 겪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이런 이유로 올드시티는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구로 지정됐고, 국제사회는 동예루살렘에 국제 통치 하의 특별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1967년 3차 이스라엘-아랍 전쟁으로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올드시티를 포함한 동예루살렘을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영토에 포함시켰다. 올드시티를 점령한 3일 후 이스라엘은 불도저를 동원해 모로코인 거주지역을 강제 철거하고 넓은 광장이 있는 현재의 통곡의벽(Western Wall)을 만들었다. 유대인 성지는 이렇게 해서 만든 통곡의벽이 유일하지만 이스라엘은 올드시티를 유대인 성지로 취급하고 해마다 수많은 유대교 순례자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올드시티 안에는 기독교 구역(Quarter), 아르메니아 구역, 유대인 구역, 무슬림 구역의 4개 거주지역이 있다. 유대인들의 의도적 매입으로 무슬림 구역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고 한다. 올드시티 안에서는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감시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올드시티 안과 입구의 문에서는 이스라엘군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공격과 무력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일이 생긴 후 알 아크사 모스크에 대한 무슬림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조치가 이뤄지고 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삼엄하고 긴장된 상황이 지속되는 이유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공격 때문인 것 같지만 사실 근본원인은 이스라엘의 점령과 억압이다. 이스라엘은 정부와 군 차원에서 악법과 군사규정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억압과 탄압을 하고, 팔레스타인은 개인 차원에서 저항하거나 때로 공격을 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공격은 민간인이나 관광객이 아니라 대부분 이스라엘 군인을 향한 것이다. 그러니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민간인을 겨냥하는 '테러'로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이 모든 일을 '테러'로 부르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취급한다.
이스라엘 정부에 의하면 2017년 한 해 360만 명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는 2016년보다 25%나 급등한 수치다. 이 통계에는 다수의 성지순례자들이 포함돼 있고 그들은 많은 성지가 있는 팔레스타인도 방문한다. 팔레스타인 교회는 한 해 약 150-200만 명이 성지순례를 위해 팔레스타인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들 모두를 환영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서 억압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을 외면하고 이스라엘 쪽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 오히려 팔레스타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성지순례자들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전혀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팔레스타인 교회는 때로 같은 신앙의 형제자매인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더 배신감을 느낀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억압과 핍박으로 팔레스타인 기독교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존재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데 말이다.
팔레스타인 기독교 인구는 20세기 초만 해도 15%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는 1% 미만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 인구 감소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무슬림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억압과 핍박으로 기독교인들이 계속 팔레스타인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에 비해 출산율이 낮아 상대적으로 인구 비율이 감소하는 이유도 있다고 한다.
적은 인구지만 기독교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기독교 초기부터의 신앙 전통을 이어오고 있고 기독교인 숫자에 상관없이 교회가 사회 각 분야와 연대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정교회, 동방정교회, 가톨릭, 개신교가 함께 연대하고 활동한다. 교회가 토지의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고 많은 성지가 있는 것도 교회가 영향력과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교회에 압박을 가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한 가지 예로 교회협의회 대표단이 방문하기 2달 전인 2018년 2월에 예루살렘시가 그동안의 전통을 깨고 교회에 세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교회 재산을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기독교의 존재를 약화시키고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려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교회지도자들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올드시티에 있는 성묘교회를 3일 동안 닫았다. 이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고 결국 예루살렘시는 계획을 보류하기로 했다. 매일 수많은 성지순례자가 올드시티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성묘교회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관광수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세금 부과 계획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보류한 것이어서 교회는 다방면으로 계획을 철회시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팔레스타인이 간직하고 있는 기독교의 역사와 상징성, 그리고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젊은 신학자는 자신의 조상이 처음 기독교 신앙을 가졌던 가족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때문에 자신은 성경의 이야기를 책이 아니라 조부모로부터 구전으로 전해 받았으며 자기 딸에게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만난 교회지도자들은 성경이 팔레스타인 사회를 반영하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써진 사실을 강조하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또한 기독교가 서구사회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됐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세계의 주류 교회는 '약속의 땅'에만 초점을 맞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지지하고 이스라엘과 정치적, 외교적으로 연대하면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유감을 표했다.
이스라엘의 억압이 계속되고 기독교 인구는 감소하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팔레스타인 교회는 2009년 팔레스타인 상황을 알리고 세계교회의 연대와 지지를 요청하는 카이로스(Kairos)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17년에 다시 팔레스타인에 있는 교회와 기독교단체들이 공동으로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카이로스 선언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팔레스타인 상황이 더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세계의 많은 교회가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외면하고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행동을 승인 내지 묵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교회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연대하지도 않음을 의미한다.
긴급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팔레스타인 교회는 비폭력 저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미래가 없는 암담한 상황이지만 폭력에 의존하면 저항의 정당성을 잃고 결국 폭력의 악순환이 야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문제 제기와 저항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도 분명히 하고 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에 정의와 평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교회는 한국교회에게 지지와 연대를 요청했다. 구체적으로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직접 현장을 보기를 당부했다. 성지순례를 할 때도 반드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을 요청했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끝내고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데 한국교회가 동참해주기를 호소했다.
성지순례를 위해 이스라엘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사람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적어도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의 올드시티에는 갈 것이고, 그곳은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땅이며, 성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분리장벽과 검문소, 난민촌, 유대인 불법정착촌, 강제 철거된 팔레스타인 주택 등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존재하는 것 자체를 투쟁과 저항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리고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마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가 물리적으로 존재했던 곳만을 더듬으며 예수의 가르침은 외면하는 성지순례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보며 예수의 가르침을 재해석하는 성지순례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