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혜원의 약제사이면서 동시에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대학의 설립인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언더우드 선교사(1859∼1916)일 것이다. 초기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그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큰 빚을 졌다.
언더우드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고자 그의 선교, 교육, 전도 활동을 되돌아보는 세미나가 30일 한국교회사학연구원에서 열렸다. 세미나의 발표 순서에 앞서 특별 참석한 피터 언더우드는 “우리의 증조할아버지 언더우드를 기억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며 “할아버지를 비롯한 언더우드 가문이 이 땅에서 이룬 모든 업적은 비단 언더우드만의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셨던 선교사 모두의 것이다”라고 했다. 유족대표 피터 언더우드의 인사 뒤엔 주재용 박사(한신대 전 총장)의 설교가 이어졌고, 문성모 총장(서울장신대)의 축사, 박옥선 이사장 축도가 이어졌다.
이양호 한국교회사학연구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세미나에는 김은섭 박사(사단법인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가 ‘언더우드의 선교’란 주제로 발표했다.
▲ 김은섭 박사가 언더우드의 선교관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 |
김은섭 박사는 언더우드의 자립적 선교관, 동량적 선교관, 에큐메니컬적 선교관 등을 살펴봤다.
자립적 선교관에 대해선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마련하는 이 원리의 실천을 통해 한국 교인들은 의존하고 복종하는 종의 의식을 버리고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주인의식을 갖게 됐으며, 근대적 의미의 시민으로 성장했다”고 했고, 동량적 선교관에는 “언더우드의 시야는 한국 전역을 포괄했고, 그에 대한 체계적 이해도 대단했다”며 종교(유교·불교·무교), 무역, 농촌, 농림수산업, 도시, 인구, 기후, 지형, 금융, 경제, 위생, 질병, 여성, 가옥, 계급, 조정, 양반, 문화, 문자, 의상, 장례 등 모든 곳에 눈이 가 있었다”고 했다.
특히 에큐메니컬적 선교관에 대해선 “언더우드는 결코 종파적·계급적·인종적 편견을 가진 적이 없고, 그의 존재의 모든 흐름은 연합을 향하고 있었다”며 “무의식적으로 모든 살아있는 영혼에게 도움과 사랑을 베푸는 친밀한 교제를 이루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아울러 190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직한 '재한복음주의선교공의회'의 성격을 짚어보며 그의 에큐메니컬적 선교관을 재차 조명했다. 김 박사는 “공의회의 목적은 선교사역을 협력해 마침내 한국에서 단 하나의 토착교회를 조직하는 것이었다”며 “공의회에서는 교회 찬송가, 코리아 미션필드, 주일학교 공과책 발간 등을 협력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단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소망이었다”며 강의를 마쳤다.
언더우드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많은 학자들과 성도들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