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소개> 본 코너에서는 교회 및 여러 모양의 사역 현장에서 함께 생각해볼만한 담론을 제시한 논문들을 짧게 소개합니다.
교회 교인들이 모이는 공간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예배당, 성전, 교육관 등이다. 현요한 교수는 「교회는 성전인가」 논문에서 예배 장소를 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비성서적이고 비복음적"이라고 지적하며, 이 호칭 이면에는 잘못된 의식구조와 왜곡된 신앙생활이 있을 뿐 아니라 복음의 성격을 훼손하고 있기까지 하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그 어느 곳에서도 공간 그 자체가 거룩했던 적은 없다. 아브라함 시대에도 성전은 없었고, 출애굽 시대에 와서야 이동식 성소가 생겼으며, 가나안 정착 후에야 고정된 건물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것도 솔로몬 시대에 가서야 세워졌는데, 그러나 솔로몬도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라며 지상의 공간에 하나님의 현존을 가둘 수 없음을 인지하였음을 성서는 기록한다.
신약시대에 가서 성전은 더 이상 건물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 않았다. 예수께서 자신의 몸에 성전이라는 의미를 부여했고(요2:21) 바울사도도 여러 서신에서 신자들의 몸이 성전인 것을 강조하였다. 신약성서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 성에는 성전이 없다고 기록하였다(계21:22). 현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이후 성전은 더 이상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그리스도 자신이나 살아있는 그의 백성들을 가리킨다"며 "이제 하나님의 임재는 살아있는 사람들 안에, 마음에, 인격에, 몸에, 일상 생활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예배당은 여전히 거룩하다. 현 교수도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여러번 서술한다. 다만 예배당이 거룩한 이유는 그 장소와 건물이 거룩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거기만 계시기 때문도 아니고, 다만 "그 공간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거룩한 일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 자체에 거룩헝을 부여하여 공간을 나누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막히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찢어진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현 교수는 "그것은 대단히 비성경적이고 비복음적"이라고 비판한다.
일상의 교회 생활에서 우리가 아이들이 강대상에서 장난하도록 방치하지 않는 까닭은, 그곳이 지성소이기 때문이 아니다. 혹은 장난치는 자가 아이이거나 여자라서도 아니다. 그곳은 '예배'를 위해 잘 보존되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예배당 건물 없이도 200-300년간 부흥하였다. 현 교수는 "교회가 활동하기 위한 건물 자체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단지 한국교회가 건물 자체를 신성시하고 필요 이상으로 치장하면서 진정한 성전을 세우는 일 즉 사람을 살리는 일에 등한시하지 않아야 함을 경계하였다.
* 이 기사에서 다룬 논문은 『교회와 신학』 30호(1997) 44-54쪽에 게재되었고, 저자는 현요한 교수(장신대, 조직신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