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구약의 말씀: 출애굽기 24:15 ~ 18
모세가 산에 오르니, 구름이 산을 덮었다. 주님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엿새 동안 구름이 산을 뒤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는 주님의 영광이 마치 산꼭대기에서 타오르는 불처럼 보였다. 모세는 구름 가운데를 지나, 산 위로 올라가서, 밤낮 사십 일을 그 산에 머물렀다.
서신서의 말씀: 골로새서 1:19 ~ 22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전에 여러분은 악한 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분의 육신의 몸으로 여러분과 화해하셔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내세우셨습니다.
복음서의 말씀: 마태복음서 17:1~ 8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따로 데리고서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더불어 말을 나누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여기에다가 초막을 셋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아직도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으며,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그들에게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다. "일어나거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이 눈을 들어서 보니, 예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설교문
교회력에 따르면 오늘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얼굴에 변화가 일어난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여신학자 도로시 세이어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날부터 산상변화의 날까지가 예수님 생애의 전반이며 그 때부터 십자가의 죽음까지가 후반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모세, 엘리야와 이야기 하십니다. 그런데 후에 두 사람은 사라져버리고 예수님이 혼자 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는 먼저 모세의 시대처럼 율법을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했지만 율법으로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 같은 예언자들을 보내서 사회 개혁을 하려고 했지만 예언자들을 통해서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율법이나 예언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완성시키려고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완성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마태복음 5장 43절에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내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라고 했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온 이유는 율법을 넘어서서 원수를 사랑하게 하려는 것이며 너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구별 없이 햇빛도 비도 똑같이 내려주시지 않느냐. 나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언과 율법을 완성 시키려고 온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여기에다 장막을 셋을 짓고 한 장막에는 선생님, 한 장막에는 모세, 한 장막에는 엘리야를 모시고 이 산꼭대기에서 삽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그 말을 듣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서 고난의 현장으로 가십니다. 고난이 가득한 세상으로 가셔서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그의 뜻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번 고난주간에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예수님의 그러한 뜻입니다. 첫째는 이것입니다. 이 세상은 모세의 율법이나 엘리야의 예언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 할 때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먼저 변화산 위로 올라가서 변화된 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변화산에 관한 성경구절을 읽을 때마다 늘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미국의 흑인 해방자 마틴 루터 킹 목사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과 백인 간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워싱턴 DC에서 20만 명을 모아놓고 백악관으로 행진을 합니다. 그 때 그는 “나는 변화산에 다녀왔다.” 라는 설교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변화산에 다녀와서 이 일을 하는 것이다. 모세와 같은 율법이나 엘리야와 같은 예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행진을 하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백인을 향하여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유의 깃발 아래에서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얼싸안고 함께 춤추는 그 날을 향하여 행진했습니다. 사랑으로 흑인과 백인의 관계를 완성하려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수많은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 중에서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만이 미국의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만이 사랑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같이 변화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변화산 위에 장막을 짓고 영적인 생활만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영적 체험이 없이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만 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변화산을 거친 후에 예수님과 함께 고난의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 서울에서는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전 세계의 500가지 십자가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이미 예수님께서 혼자 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의 뜻을 다 이루었다. 그리고 요한복음 16: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여러 가지 시련이 있겠지만 너희는 걱정하지 말아라. 용기를 내어라. 왜냐하면 나는 이미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정복하고 승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다 이루셨던 것에 함께 참여하겠다는 뜻입니다. 골로새서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가 모든 피조물과 화해를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한 화해의 역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화해의 역사에 참여한다고 할 때에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전쟁을 평화로 바꾸는 일도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우주의 모든 물질에는 정신적인 파동이 있으며 우리가 욕심과 분노와 질투 등을 할 때면 우리의 부정적인 파동이 모든 만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 응답하여 나아갈 때에는 긍정적인 파동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런 긍정적인 파동은 피어있는 꽃 한송이나 야생 식물 한 포기, 흘러가는 물에도 진짜 진공 공명 에너지가 생겨나도록 만듭니다. 이렇게 우리 몸 속에는 우리가 볼 수도 없는 우주가 들어있습니다. 내 몸 안에 있는 60조의 세포가 우주와 관계되어져서 움직이고 있고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물, 식물 등의 모든 물질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파동에 의해서 죽어가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 긍정적인 파동을 전달해야 합니다. 굶주리고 병들고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공기와 물과 오존층에도 전달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파동은 막아 버리고 긍정적인 파동을 전해서 전 우주와 화해를 하는 하나님의 화해의 역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세상이 어떻습니까. 국회에서도 텔레비전에서도 고함소리와 미움과 독선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사회가 어떻게 병들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제는 이 사회에 참 사랑의 음성을 전해서 긍정적 반응으로 바꾸어 갑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요한일서 3장 14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음의 나라에서 생명의 나라로 옮겨왔기 때문에 서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의 영토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사랑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 현장이 생명의 영토가 된다. 우리 모두가 긍정적 파동을 일으킬 때, 우리는 생명의 영토에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의 승리를 믿고 이제부터 우리의 삶에서 긍정적 파동을 일으켜 나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