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처자(숨겨둔 처자식)·학력위조 의혹 등으로 자질시비에 휩싸였던 설정 조계종 총무원장이 퇴진의사를 밝혔다.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성우 스님은 설정 총무원장이 "16일 개최하는 임시중앙종회 이전에 용퇴하시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우선 '용퇴'라는 말부터 바로잡아야겠다. 용퇴는 말 뜻 그대로 용감하게 물러나겠다는 의미다. 용감하게 물러나다니, 무언가 괴리감이 든다. 출가해 승복을 입은 처지라도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 종단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딘가 남다른 점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더구나 숨겨둔 처자식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당사자가 한 불교종단을 대표하는 위치에 올라갔다고? 이건 세상의 이치와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럽다. 조계종이 유력한 위치에 있는, 이른 바 권승들의 비리로 얼룩져 있다지만 개신교라고 해서 사정이 낫지 않다. 누가 더하고 덜한지 비교하는 건 무의미 하다. 똥 묻은 개나 진흙탕에 빠진 개나 더럽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이 이토록 타락한 게 참으로 어이없을 뿐이다. 교회든 사찰이든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편이 더 나아 보인다.
내가 불교에 부러움을 느끼는 건 '결과'가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단 의혹의 중심에선 설정 총무원장은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종단의 원로인 설조 스님은 조계종 개혁을 주장하며 41일 동안 곡기를 끊었다. 팔순을 넘긴 설조 스님의 단식이 종단 내 뜻있는 스님들과 불자들을 일깨운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는 <불교신문>을 통해 설조 스님의 단식을 폄하하는가 하면, 불자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일주문 앞에 연꽃화단을 설치하는 등 설정 총무원장 측의 대응은 참으로 치졸했다. 그럼에도 원로 스님의 단식이 지핀 개혁 목소리는 막지 못했다.
후속조치도 예정돼 있다.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 모임'은 오는 23일 승려대회를 열어 중앙종회의원들과 본사주지들의 자진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할 방침임을 밝혔다. 또 권승들이 종단을 농락하는 사태를 막고자 종단개혁기구를 출범시키겠다는 뜻도 함께 밝혔다.
이 지점에서 교회를 되돌아본다. 지금 한국 개신교 교회는 크기를 막론하고 비리로 얼룩져 있다. 대형교회의 경우는 '비리백화점'이라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름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교회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비리가 불거져도 원로 목회자들이나 교계 유력 인사들이 목숨을 내놓고 단식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원로들이 각자의 처소에서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더 많다. 때론 '동업자 의식'으로 비리 목회자를 감싸는 경우도 종종 불거진다. 최근 명성교회 강단에 올라 아주 확신에 찬 어조로 "그래 왜, 우리 세습이야. 뭐 어쩌라고"라 외친 고세진 목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끼리끼리 정신은 총회 정치판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가끔씩 금식 기도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한국 교회의 개혁 보다는 '자기' 교회의 부흥을 위한 목적이 더 강하다. 이런 실정이니 개혁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언제쯤 원로 목사가 한국 교회의 갱신을 촉구하며 단식 기도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될까? 아마 원로 목사의 단식 기도 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먼저 이뤄지지 않을까?